안타까운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 볼 때 나는 과연 순수한 연민과 동정인 걸까? 아니면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고 그나마 난 다행이라는 위안을 삼는 걸까? 가끔 감빡깜빡 거리는 횡단보도를 급하게 건널때면 `꼴찌만 아니면 돼` 라는 생각을 한다. 빨간불로 바뀌었는데도 굳이 건너겠다는 민폐짓에 비난의 화살은 마지막 사람에게 돌리겠다는 심보. 혹여 성질 급한 차가 들이 받더라도 마지막 사람이 있으니 안심일거라는 못된 심보가 내 안에 공존하는 듯하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로증에 걸려 죽음을 앞둔 17살 소년과 34살 부모의 이야기다.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간의 이야기로 설명 되기도 한다. 주인공 아름이의 부모는 17살때 사고쳐서 아름이를 갖게 된다. 어린 나이에 출산과 육아를, 가족의 부양과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하는 부모가 된 것이다. 이들의 모습에서 부모는 어려도 부모라는 것을 공감하게 된다.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누구도 본인의 어린 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특히 서너살 이전의 경험은 온전히 복원될 수 없는 거니까, 자식을 통해 그걸 보는 거다. 그 시간을 다시 겪는 거다.
아름이의 외모는 80~90살 노인이다.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혼자 책 보는걸 좋아해서인지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생각과 배려심이 깊다. 어떨 때는 부모보다 더 어른 스럽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는 이웃인 60대 장씨 할아버지가 나온다. 이 둘의 공통점은 외적으로는 늙었어도 부모 앞에서는 마냥 아이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ㅡ할아버지 나 또 뭐 물어봐도 돼요?
ㅡ평생 아픈 대신 장수하는 자식과 건강한데 요절하는 자식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
ㅡ아름아
ㅡ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ㅡ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주인공 아름이는 전세계적으로 희귀병인 `조로증`을 앓고 있다. 나 역시 원인불명의 난치병을 갖고 있다. 처음 의사로부터 결과를 들었던 날, 애써 덤덤한척 했지만 한밤중에 혹시나 부모님 들을까 소리 죽여 한참을 울었다.
`내가 왜? 그렇게 건강하던 내가 왜?`
`왜 하필 나야?`
원인 불명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동안의 내 행동 속에서 이런 병을 얻게 만든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의심도 든다. 아름 엄마가 임신한걸 알고도 죽어라 달리기 한 것을 후회하고, 아름 아빠가 제발 아빠가 되지 않게 해달라고 나무에 대고 빌었던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까운 상황은 소설이나 뉴스에서만 나오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 내 주변에서 또는 내가 겪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설픈 동정은 되려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말 한마디에 신중하자. 인간이라면 측은지심을 갖는다고 맹자는 말했다. 한 편의 소설 속에서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반성해본다.
----하늘고기의 북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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