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3.29~4.7)
인권 이야기, 그리고 <불편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에 자연스레 ‘장애인 인권 얘기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과연 재미있을까? 의심이 앞섰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나의 선입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년, 성 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인종 등 신분에 따른 부당한 차별부터 폭력, 병역거부, 영화의 검열, 제노사이드까지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김두식 경북대 법대 교수가 쓴 이 책은 영화광인 그가 영화 속 인권에 관한 불편한 진실과 그의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부제인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는 괜한 소리가 아니다. 재미없었던 영화나 아무 생각 없이 깔깔대며 봤던 영화도 관점만 살짝 달리하면 그 속에 씁쓸한 진실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라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이라 표현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는 있지만 굳이 꺼내 말하거나 생각조차 꺼리는 주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역지사지’란 말은 쉽지만 제대로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장애인 인권을 훌륭하게 다뤘다고 평가되는 <오아시스>도 전심으로 그들의 입장이 되지 못한 옥에 티를 갖는다. ‘장애인은 사회의 불합리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는 무의식의 전제조건이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인종 차별과 편견이 심각했던 시대 속에서 큰 파장과 호응을 일으켰던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더 큰 오류를 안고 있다. 소설 속 히어로인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통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라는 황금률을 가르친다. 그러나 소설의 핵심 메시지와는 달리 정작 인종 차별의 피해자인 흑인들의 목소리는 작으며, 백인들의 시각에서 바라본 흑인 인권 이야기라는 점에 한계가 있다. 흑인 입장에서 보면 ‘불쌍한 흑인’을 돕는 ‘의로운 백인 변호사’이야기에 불과하다.
‘똘레랑스tolerance’라 일컫는 유럽 문화의 기원을 따져보니 소름 끼친다. 16~17세기에 종교를 이유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여서 ‘이러다간 사람 씨가 마르겠다’ 싶어 별 수 없이 관용하기에 이르렀다는 배경을 갖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얼마나 많은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갇혀 살고 있는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풍덩 뛰어들어 함께 하지 않는 한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문제를 의도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사람이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첫 장의 청소년 인권 문제는 바로 내가 지난 시절 겪었던 일이며 노동자 인권 문제는 나와 내 부모의 입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동남아인들에게 무심코 던진 돌은 우리가 반대로 영어권 국가에 갔을 때 되돌아온다. 유리벽에 막혀 몸부림치는 당사자가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양극 간의 차이는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불편해도 괜찮아>는 프레임에 갇혀 편견과 무주의 맹시 속에서 당연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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