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3~ 1.17

김영하의 《읽다》를 읽고 나니 소설을 읽고 싶었다. 《빅피처》, 《더잡》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 더글라스 캐네디 작품이 읽고 싶었다. 알라딘으로 가서 그의 작품 중 《리빙더월드》가 하나 남아 있어 집어들었다. (사실 《템테이션》이 읽고 싶었으나 없었음...)

더글라스 캐네디 작품의 국내판 표지 일러스트는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유심히 살펴보았다. 갈색머리의 젊은 여자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차창에 팔을 걸치고 앉아 전면을 응시하고 있다. 하지만 두 눈의 초점은 앞을 보는것인지 왼쪽을 보는것인지 알수가 없다. 중요한것은 분노에 찬 두 눈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것 같은 모습이지만 꾹 참고있는것 처럼 보인다.

˝끊임없이 밀어 닥치는 위기와 불행,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표지의 문구를 살펴보면서 소설 속 여인의 불행이 앞으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지 일러스트를 통해서 미리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아버지와 동거남의 배신, 어머니의 책임 전가(죽는 순간 까지도), 유일하게 사랑했던 지도교수와 딸 에밀리의 죽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각기 다른 불운을 안고 있다.˝라고 했던가. 비슷비슷한 행복 이야기로 소설을 쓰기에는 할 말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고 있는 우리의 주인공 제인 하워드는 미안한 말이지만 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가장 적합했다.

내가 이 소설에서 특히 공감하며 읽은 부분은 위험한 연인 테오와의 갈등이었다. `남편`은 아니지만 딸 에밀리의 `아빠`였던 테오에 대해 주인공 제인은 그의 강한 개성과 마성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의 개인주의자 성향은 에밀리를 낳고서부터 이기주의자로 변질되었고 결국 제인을 배신하기에 이른다.
자식을 낳고 길러본 여성 독자라면 이 챕터에서 제인이 느꼈을 감정에 대해 같이 마음 아파했을 것이고, 나같이 남성 독자라면 아내의 심정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테오같은 쓰레기가 되면 절대 안되겠구나 하는 경각심을 느꼈을 것이다. `육아`와 `출근`에 대한 각자의 `피로감`의 경중을 어찌 따질 수 있으랴? 일한다고 아내에게 육아를 떠맡기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가 더 피곤하다며 소홀히 하는 내 모습이 테오와 다를바 뭐가 있을까? 소설을 통해 많이 반성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딸이 곁에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고 그 순간에는 고통의 일상이 한순간에 사르르 녹게되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는 주인공 제인에게서 내 아내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내 아내를 보면 육아가 힘들다고 짜증을 내다가도 아이를 보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내 아이구나 하며 늘 감사해한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스토리상 실제 일어나기 힘든 `막장`의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디테일한 표현력과 등장인물의 솔직한 감정표현은 소설을 더 실제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번 작품은 읽는 내내 `아버지는 언제쯤 반성하고 사과를 할까, 아니면 어떤 반전이 있지 않을까?`, `엄마와의 깊어진 갈등은 언젠가는 메꿔지겠지?`라는 나의 예상은 모두 빗나갔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소설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예상대로 스토리가 전개되면 그건 진짜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며 현실다운 맛이 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의 후반부 `실종사건에서 해결사 역할을 해내는 스토리`를 보고 있자니 그 동안의 스토리 전개와 동떨어진 다른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부분을 가장 몰입해서 빠르게 읽긴 했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억지스러워 `소설 쓰고 앉아 있네~`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마지막 챕터에 들어서 결국 이 모든 사건을 감내하고 `이미 달라져버린 세상`을 살아가기로 결정한 주인공의 내면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비교하여 메세지를 전달하며 마무리 하고 있다.

˝바로 그게 인간의 운명이야. 임의대로 떨어져 나온 입자들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듯이 인생도 우리를 상상하지 못한 세계로 데려가는 거야, 결국 불확정성 원리가 인간 존재의 매순간을 지배하는 것이지.˝

불행의 연속 속에서 과연 주인공은 어떻게 이겨내고 위안을 받을까라는 질문은 허무하게도 이렇게 끝나버렸다. 후반부 실종사건의 `탐정놀이`가 맥을 끊어 놓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예상치 못한 전개와 디테일한 묘사력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작품 《템테이션》, 《파이브 데이즈》, 《빅퀘스천》 등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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