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 서울대 교수 조국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
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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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 12.26

이 시대의 진보적 지식인 조국 교수는 이 책에서 과연 어떤 울림을 줄까? 하는 기대로 책을 펼쳤다.
아, 우선 책을 펼치기 전에, 책 표지, 정말 마음에 든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를 표현하려는 의도인듯 하다.
정확한 경중을 가려줄 저울을 왼손에, 냉정한 집행을 위한 검은 오른손에, 그리고 공정하기 위해 안대로 눈을 가렸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에서는 안대를 벗은 모습이다. 왜 그랬을까?
중용에 대한 글에서 그 의도를 짐작해 본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법학과 법률가는 `중용`을 취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틀린말은 아니다. 유의할 점은 중용이란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대립하는 측으로부터 기계적, 산술적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한 태도는 `황금`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도금칠한 `중간 치기`일 뿐이다. `중용`의 `중`은 `가운데`가 아니라 `정확함`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비겁`더 `만용`도 아닌 `용기`가 `중용`이다.
만약 현실의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법은 균형을 다시 맞춰주어야 한다. `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현실 사회와 실정법의 모순과 문제점을 외면하면 현실의 불균형은 방치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중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정의의 여신 디케도 자신이 들고 있는 저울의 추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항상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p.165~166)
표지의 여신 디케도 저울의 추를 수시로 맞추기 위해 안대를 벗어 던진게 아닐까?

책 제목은 정말 내용에 충실하다. 내용의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가 왜 법을 공부하게 되었는지, 왜 고시를 보지 않고 판사가 되지 않으려 했는지에 대한 이유가 담겨있다. 또한 한국 교육과 사회의 문제점,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현실에 대한 비판과 본인도 그 기득권 중의 한명이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미안해 한다. 그렇기에 현실에 부딪혀 포기하지 말고, 견뎌내고, 버티고, 결국 이겨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한 방`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세상은 전진후퇴,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며 천천히 달라진다. 조급하게 마음먹거나 행동하지 말고 이 과정을 다 버텨내야 한다. 세상이 지금보다 빨리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모든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p.230)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 [진정한 여행]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p.254~255)
그리고 이 책의 주제라고 생각되는 부분이자 내 블로그 제목을 결정하게 된 내용이다.

우리 모두는 `공부하는 인간`이어야 한다. 여기서 `공부`는 `학교 공부`릉 포함하지만, 그것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은 삶의 공부를 뜻한다. 성적을 위한 것이든, 먹고 살기 위한 것이든, 세상을 알기 위한 것이든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으로 먹고살건, 공부할 때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 공부는 바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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