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은 참 불편한 도구다. 깎아야 하고,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점점 짧아져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그래서 연필을 좋아한다. 깎을 때 나는 나무 향, 사각사각 흑심이 종이에 묻는 소리, 펜이나 샤프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이 있다. 닳아 버린 연필을 다시 깎을 때는 생각을 다듬고 마음을 정리한다. 반듯하고 뾰족하게 깎인 연필심을 종이에 댄 순간의 느낌이 좋다. -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