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무선)
프레더릭 모턴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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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가 되기도 어렵고 부자로 태어나기도 어렵다. 하지만 수세대를 거쳐 부자가문으로 남기는 더더욱 어렵다.

세계적인 금융가문인 로스차일드, 사금융기관이라고 한다. 은행이 개인 또는 가문의 소유라는게 우리에겐 낯설다.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구에선 일찌감치 사금융기관들이 숱한 실패와 성공을 오가며 경제를 안정시키고 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이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가 로스차일드 일가이며 한때 그들의  영향력이 막강해 유럽의 중앙은행 - 우리로 치면 한국은행 - 역할을 하기도 했고 세계 경제와 금융을 쥐고 흔들던 시절도 있었다. 금융을 대표하는 가문으로 로스차일드일가와 JP모건일가가 기억나는데 JP모건 일가는 3대에 걸쳐 영예를 누리고 난후 경영일선에서 가문의 일원들은 거의 빠지고 이름만 남았다면 로스차일드가는 여전히 그들 사업의 중심에 남아있다.

100년 보다도 훨씬 긴 세월을 추적해 가면서 로스차일드가의 기회와 성공, 전성기와 변화과정을 추적하고 있는데 나폴레옹시절에서부터 세계1차대전 까지의 역사는 그들 가문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고 있다. 

로스차일드가의 성공은 초라한 유대인으로 금융업을 배운 마이어가 유대인 차별과 경제적 제약이 많았던 그의 고향 게토로 귀향하는데서 시작된다. 오래된 동전을 수집하는 고물상으로 기회를 노리다 귀족들과 거래를 하게 되고 환전상을 하면서 점차 부를 쌓아 가지만 그의 다섯 아들들이 없었다면 한 지역의 부호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그의 다섯 아들들은 유럽의 거점에 진출해서 다른 가족들과 협력해 사업을 벌여 나갔다. 지금으로 보면 글로벌 전략이었던 셈이다. 런던, 파리, 비엔나, 프랑크푸르트, 나폴리에 거점을 둔 형제들은 빠른 정보와 정확한 판단력, 비상한 수단으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이는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현대적 개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분산된 네트워크로 치명적인 위험을 약화시키고 긴밀한 연결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놀라운 협력관계는 오늘날의 기업경영방식으로도 훌륭해 보인다.

잘 알려진 일화중에 나폴레옹과 영국등이 결전을 벌인 워털루 전투의 결과를 미리 알아서 주식시장에서 큰 돈을 번 것은 너무도 유명하다. 전쟁을 통해 크게 성공한 이들 일가는 그 후 유럽에 넓게 퍼져 큰 자산을 관리하게 되면서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게 된다. 실지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전쟁억지력도 늘었는데 결국 산업화의 영향으로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이들의 영향력도 제한적이게 된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면서 로스차일드가의 영향력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이들은 살아남았고 그들이 이루어낸 역사는 유럽에 존재했던 왕가들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들로 인해 유대인에 대한 숱한 차별장벽이 개선되었고 정치적, 경제, 사회적으로 숱한 일화를 만들어 내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일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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