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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진실 - 갤브레이스에게 듣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음, 이해준 옮김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갤브레이스의 이 짧은 에세이들에서 현대경제의 대기업과 기업경영자에 집중된 권력의 편향과 그로 인한 부패현상이 거칠게 다루어 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명한 경제학자이면서 정치와 권력이 갖는 함수를 심도있게 탐구해온 예리한 관찰자로서 현대 경제의 기업권력과 관료화에 대한 비평은 현실경제에 대해 일반적이 아닌 예리한 틈새의 시야를 제공해 준다.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실체는 무엇이고 현대경제의 진실은 무엇일까?
미국은 토크빌이 그의 주저(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역설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일찍부터 꽃피운 토양이다. 그 발전과정은 지리적, 자연적 이점위에 유럽의 앞선 사상과 법률이 정착하고 그 위에 다양한 문화들이 주권재민과 자치구조를 이루면서 상향식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연방형태로 발전해 왔다. 평등과 자유란 이념이 초기부터 배태된 미국의 이상은 저자가 권력구조를 해석하는데 비판적이고 첨예한 시각의 근원인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전반 경제와 금융권력의 집중에 대한 견제로 거대 트러스트 기업을 해체하도록 이끈 반독점법의 배경엔 이런 신념이 있었고 그 시대와 사상을 배웠던 저자의 회고를 느낄 수 있다.
전제군주에 의한 통치구조속에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에게 권력에 대한 이해는 그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권력의 횡포에 무심하거나 별다른 반발없이 권위가 받아들여지는 현상들이 여전하다. 정치적 권력이 투표와 여론을 통해 어느정도 민주화되었고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만 거대 대기업들의 권력은 재계에만 한정되지 않고 정치권과 행정 깊숙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저자의 의도는 타락해 가는 미국의 이념을 회복하고 대기업의 권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보인다. 이런 현상이 단지 미국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국적 거대 기업의 모습으로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점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권력에 취약한 우리에겐 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내용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내용 중 두 가지 주제를 선별해 정리하고 싶다.
하나는 소비자주권과 근로의 문제
둘째는 기업권력과 관료화문제다
저자는 베블렌의 <유한계급론>을 언급하면서 역사적인 자본주의의 속성을 현대경제체제와 연속선상에서 연관시킨다.
'일의 모순'을 통해 생계를 위해 마지못해 단순반복적이고 불쾌한 경험을 감내해야하는 '일'과 여유와 자유, 성취동기가 명확한 부류의 '일'이 동일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한때의 자본가들은 지금은 경영자로 이름을 바꾸고 그들만의 '일'을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일반 서민들의 '일'과 동등하다고 주장하는건 모순이다.
자본이란 말보다 시장이란 표현을 더 선호하는 최근현상에 대해 자본주의에서 시장체제로 변화하고 이동한 것이 아니라 부정적 의미를 연상시키는 자본주의를 무의미한 시장체제라는 말로 포장만을 바꾼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소비자주권이란 표현도 생산자의 주권이 소비자에게 넘어간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상은 자본가와 생산자에 의해 광고와 마케팅으로 여전히 대중을 조정하고 있다고 본다.
구매선택권, 투표제도, 수요곡선 등이 소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결과적으로 대중의 권력이 강해지면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 것 처럼 선전하지만 그 보이지 않는 이면엔 자기 통제력을 상실하고 관료주의화한 대기업이 자리잡고 있음을 역설한다.
'결백한 사기'라고 명명한 이 행태는 죄의식은 없고 자기 신념만이 강조되는 결과물로서 사유재산과 이익추구를 정당화함으로써 당연한 것처럼 인식되지만 그 행위와 결과는 결코 결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꾀하는 전략이 아니라 개인 또는 집단의 이익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을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표현한 결과"가 사기행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권력이 대중과 소비자에게 있다는 환상의 다른 측면으로 GDP의 의미를 들고 있다.
"GDP의 구성은 일반 국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성요소를 생산하는 이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은 우리가 문명과 생활수준의 척도로 삼는 통계수치의 허구성을 잘 보여준다. 교육, 문화, 예술이 사회적 성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생산량으로 경제, 사회적 성과가 측정되어 진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일반적인 믿음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관료주의화한 대기업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데 '기업경영'이란 표현은 '관료주의'의 다른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소유주와 기업경영가가 분리되고 있지만 경영진이 선출한 이사회가 전적으로 경영진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주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것이 널리 인정된 의례적인 측면이지만 이는 기업권력과 관료주의를 합리화하는 또 하나의 사기라는 것이다.
미국의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권위에 의지한 과장되고 무능한 금리효과와 과거의 우연한 성공과 차트, 방정식, 자신감같은 요소들로 무장하고 알 수 없는 미래를 예측하고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금융권을 미필적 고의가 아니라 완전한 사기로 규정하고 있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구별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으로 대기업집단의 권력이 정치와 행정의 영향권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밝히고 있기도 한데 '군산복합체'가 대표적일 것이다. 지금도 수행되고 있는 이라크전에서 민간부문의 역할은 단순한 지원에 그치지 않고 신병을 모집하고 훈련을 시키고 현장에 투입하는 전쟁에 직접연관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교전의 확대가 기업들에 이익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고 로비와 정치적 영향력이 어떤 방향으로 행사되어질지 추론하는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대경제에 있어 대기업과 기업경영자가 권력의 핵심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들의 이기주의와 통제불가능성으로 인해 오늘날 인간조건과 전망이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관료제에 대한 비판적인 흐름을 수용하고 잘 설계되고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대안과 해결책 없는 비판으로 아쉬움을 남기긴 하지만 현대경제에 대해 인식하는데 의미심장한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새로운 흐름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나마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대기업과 경영자에게 집중된 권력의 부패가 문제되고 있는데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자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