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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향해 달리다 - 기억과 대면한 기록들
세라 폴리 지음, 이재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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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이야기는 저자가 열 네살 때 참여했던 <겨울나라의 앨리>의 연극 공연에 참가했을 때를 다룬다. 그녀는 척추측만증에 걸린 앨리스였다. 척추가 60도 정도 기울여져 겪는 고통을 읽는 동안, 구부정했던 허리를 곧추세우게 된다. 그녀가 느꼈을 온 몸의 고통, 압박감, 외로움. 이미 그것을 통과한 자만이 쓸 수 있는 담담함. 나는 그것들을 책을 통해 오롯이 느낀다.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없다. 그것들을 모두 겪어내고 지금의 세라 폴리가 된 그녀는 연기를 하고 영화를 만들고 책을 썼다. 앨리스가 멋진 성인으로 자란 것과 같은 성장이다.


책이 집에 도착하고, 이 책과 함께 일주일을 쭉 보낼 것이라는 생각에 들떴다. 늘 새 책은 마음을 설레게 하니까. 일주일 만에 다 읽을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아직 나는 완독을 하지 못했다. 두 챕터를 겨우 다 읽었을 뿐이다. 결코 재미가 없어서, 난해해서 같은 이유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을 찌르는 장면들로 채워진 책이다. 인상적인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책 끝 모서리를 접는 버릇 때문에 이 책은 귀퉁이가 울퉁불퉁해졌다.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한 편의 가슴 아프지만 감동적인 성장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꼭 세라 폴리가 다음 작품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성장 영화를 찍었으면 하고 바랐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세라 폴리라는 배우이자 감독은 타고난 재능으로 무난히 아픔도 없이, 열등감도 없이 창작을 해왔을 것이라고 쉽게 여겼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속내를 너무나 정확한 언어로 해부하며 써 내려간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책의 제목처럼 ‘위험을 향해 달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게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하고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 느끼게 했다.


에세이를 잘 쓰고 싶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 나는 그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당시의 그녀처럼 느끼지만 문장의 얼굴을 한 그녀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온갖 이야기를 한다. 그동안 내가 에세이를 쓰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내면 깊은 곳에 굳게 닫힌 상자를 열기를 얼마나 주저했는지 반성하게 됐다. 저자는 르포를 쓰듯, 감정과 사실에 대해 솔직하게 써내려간다. 놀라운 것은 두려움과 안도감 사이,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그 사이 묘한 지점에 걸쳐져 있는 감정까지 세세히 짚어가며 글을 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거나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까지 구체적일 수 있을까. 과연 배우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냥’은 없는 것이다.


몇년 전 세라 폴리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재밌게 보았다. 그 영화도 단순히 불륜이냐 사랑이냐를 이분법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남편을 사랑하지만 새로운 사람에게도 끌리는 주인공의 감정을 차분하게 지그시 관찰하는 영화가 사랑스러웠다.

저자의 글과 영화에서는 차분한 강인함이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을 완독하지 못한 이유도 챕터마다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도 있었다. 그 중 내가 한 번이라도 겪었다면 이만큼 다시 곱씹고 떠올리고 끝내 담담히 풀어낼 수 있을까. 아휴 머리 아파. 힘들어. 하면서 덮어둔 채 살았을 텐데. 물론 저자는 그 집요함과 강함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진짜 이야기’를 숨겼다고 고백한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불가해한 인생의 갈피를 잡고, 자기 둘레에 서사를 쌓고, 혼돈 속에서 붙잡을 것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이 대답을 하는 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잠재의식의 작용을 상상한다. 내 잠재의식이 그날 밤 그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로 만들고, 그것을 납득하려 애쓰고, 현재를 정상화한다. 그와 동시에 내게서 진짜 이야기를 숨긴다." - 127 p 


어떻게 이런 탁월하고 아름다운 에세이를 쓸 수 있었는가를 이어지는 내용에서 알 수 있다. 2017년 뉴욕 타임스에 기고했다는 글에 저자는 이렇게 썼다고 서술한다.


“이런 일에 하나의 옳은 방법이란 없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때에 자신의 방식으로 말하는 것. 이것이 자기 무력화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 있어서 내가 고수하는 개념이다.” 

“노골적이든 미묘하든 여성을 비하하는 모든 방식이 과거지사로 간주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이 실현되려면 먼저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마주해야 한다. 우리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두려움, 무력감,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자괴감. 이것들에 눌려 우리가 감수해 온 것은 무엇일까? 삶의 면면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외면하고 있을까? 마음속으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용납한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무엇을 할 것인가?”- 140p


이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쯤이면 나에게도 그런 강인함과 용기가 생길 수 있을까. 적어도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이미 조금 자란 내가 과거의 나를 너그러이 바라봐줄 수 있을까. 힘들겠지만 저자가 해낸 것처럼, 이렇게 멋진 여성으로 성장한 것처럼 나도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피하지 않고 마주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나는 ‘앨리스’ 공연을 끝내지 못한 나 자신을 자주 저주했다. 그리고 자주 자문했다. 만약 그때 남은 10회 공연을 마저 끝냈더라도 내가 여태까지 이런 불안에 잡혀있을까? 그랬어도 내가 밤마다 엉망진창이 된사춘기의 악몽에 갇혀있을까?

나는 고민했다. 나는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낸 학생들에게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보탬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그러다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여는 그들에게 내 공포를 밝히고, 그들의 눈앞에서 내가 그걸 극복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9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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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을 쌓는 마음 마음의 지도
윤혜은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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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씨가 일기를 건넨 것처럼, 글쓰기 클래스의 박 선생님이 자신의 일기 묶음을 건넨 것처럼. 윤혜은 작가가 정성스레 모아둔 두꺼운 일기 모음을 건네받았다. 그의 일기를 읽을 수 있는 독자로 선택된 것은 귀중한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기장 앞에서 조금 더 시시콜콜해졌고 이 기록에는 권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나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정말로 내게 없구나,라는 서늘한 확인을 더해가던 나날들. 쓸데없는 것들로 터질 듯한 캐리어처럼 나는 도무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는 자학을 멈추기 어려운 밤에, 한 장씩 넘겨본 헬무트의 일기장은 곤두박질치는 자아 앞에 둥근 방지턱을 만들어주었다.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유, 그로 인해 다른 길로 빠져볼 수 있는 가능성을 헬무트는 이미 내게 몇 번이고 알려주었다."


게으른 나도, 유일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일기를 쓰는 일이다. 방 한켠엔 스무살 무렵부터 작년에 썼던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박스가 있고 ‘Notebook’이라는 어플에 2017년 부터 띄엄띄엄 쓴 일기를 모아두었다. 그리고 올해 선물받은 스타벅스 데일리 다이어리까지.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삶을 조금 견딜만하게 해주었다. 일기를 쓴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분명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글쓰기를 놓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일기 쓰기는 양치질, 물 마시기 같은 일상의 행위의 범주로 치부하곤 했다. 일기의 진가는 그것들이 쌓이고 지난 날의 기억이 흐릿해졌을 때쯤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기들도 훑어보게 되었다. 매일 매일 변화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과거의 내가 바라던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궤적이 보였다. 잘 살아내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일기장은 하루를 망쳐도,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게으른 것 같아 속상해도, 좋은 사람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다 와서 달뜬 마음이어도 언제나 묵묵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야말로 ‘시시콜콜’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래서 지겨워지지 않는다.


<매일을 쌓는 마음>을 읽으며 지내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하루 치의 삶을 더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났다.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럴까.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가 전달되었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들, 내 안에 생겨나는 미묘한 변화까지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장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다. 다소 납작해진 마음으로 속도와 결과에만 치중하다가, 이젠 넉넉해진 마음과 시야로 천천히 걸어가듯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래로, 소설 읽기를 멈춘 적은 없으니까. 아주 느리고 미약하게나마 쓰는 운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은 적도, 의미를 찾은 적도 없지만. 계속,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간헐적인 시도뿐이지만, 그저 ‘나도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친 뒤로는 그 순간으로부터 결코 멀어지지 못하는 자신으로 반복해서 돌아올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시나리오도, 소설도, 에세이도 잘 쓰고 싶은 욕심 많은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이 없는 소설을 ‘그냥’ 쓰고 있다. 친구들과 마감일을 정해서 짧은 소설을 쓰기도 하고, 올해 다가올 소설 공모전에 힘 닿는 데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냥, 잘하든 못하든 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반 몇 문장 조차 쓰지 못하고 덮어두기 일쑤였다. 한 문장 다음에 또 다른 문장. 그것들을 어떻게 이어나가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좋았다. 쓰지 않아도 읽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었다. 쓰는 일도 조금은 즐기며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년에는 지원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모조리 다 떨어졌다. 초라한 나의 현위치를 확인했다면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재미로 소설을 써볼까? 이야기를 만드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속내를 걷어내자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재밌게 읽는 것처럼 쓰는 것도 그렇게 해보자고. 공모전에 내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왜 굳이 쓰는 것을 놓지 못하는지 나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의 문장에서 그 이유를 가늠해볼 뿐이다.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쳐버린 안타까운 운명인 거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줄곧 소설가라고 썼다. 그 아이에게 ‘너는 소설가가 되지 못할 거야.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넌 아마도 미래에 소설가가 되어 있을거야. 꾸준히 쓰다 보면!’ 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루지 못한 무수한 꿈들 중에서 그것마저 제대로 해보지 않고 도망친다면 앞으로 마주할 미래의 나는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고개만 떨구고 있는 비겁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날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언제나 간절한 마음보다 커다랗기를 바라는 것뿐. 그럼 도망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간절해지면 무서워진다. 안 되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의 늪에 빠져버린다.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두려움으로 이어나간 글은 재미가 없었다. 그저 잠시 아무 것도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약을 먹듯, 책을 읽는다. 이 책은 그럴 때 읽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하물며 일기라도 매일 매일. 작가가 차근 차근 쌓아올린 사유로 꽉 찬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회복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쓰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성실히 해내는 작가는 도망치지 않고 오롯이 시간을 지나오는 법을 알려준다. 쓰는 일이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왜 나는 알지 못했을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떠오른 책은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꾹꾹 눌러담겨 있는 모양이 닮았다. 그래서 윤혜은 작가의 소설도 기대가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조금 더 삶을 애정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애정할 수 있는 사람.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만 했던 사람에서 그래도 나는 어찌됐든 일기를 쓰고 있으니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글을 쓰는 한 외롭지 않다고. 그런 확신이 생겼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나만은 내가 미워할 수 없는 나였으니까. 심지어 스스로를 비아냥거리는 글일지라도 쓰는 나는 내 편이 되어 주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다. ‘그런 너를 내가 알아.’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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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나의 느긋한 작가생활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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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말, 귀가 번뜩이는 말을 들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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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프리랜서도 다 해보고 - 별의별 퀘스트를 다 깨는 에디터들의 인생 성장기
오한별.유승현.김희성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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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1.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살고, 고민하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서

2 . 나 또한 프리랜서로써 자리를 잡고 싶기에 먼저 경험해본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그러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 귀여운 고양이가 털실을 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귀여운 표지와 재기발랄한 제목이 ‘이건 읽어야해!’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했다.


“프리랜서는 자유를 뜻하는 ‘프리’(Free)와 창을 사용하는 창기병 ‘랜스’(lance)의 합성어다. (중략) 왕이나 영주에게 소속되지 않은 채, 고용주의 보수를 받고 싸움에 참여하는 창기병을 프리랜서라 불렀다. 지금으로 치면 사설 용병과 같을 듯하다.”


프리랜서의 어원이 중세시대 사설 용병에서 왔을줄이야. 그저 자유롭게 일하는 형태를 지칭하는 말인줄 로만 알았다. 그러고보니, 용병이라는 말이 딱 맞다. 어디에 소속되어있진 않지만 불러주면 기꺼이 싸울줄 (일할 줄) 알아야 하는 태도는 프리랜서의 덕목일 것이다.

프리랜서에도 종류는 다양하다. 일러스트레이터, 작가, 디자이너, 유튜버 등등. <살다 살다 프리랜서도 다 해보고>는 세 사람의 프리랜서 에디터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에디터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 보았지만 여전히 어떤 일을 하는지는 생소하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모습으로 보면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잡지 화보 촬영 현장, 유명인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프리랜서 에디터라면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일까.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기획을 하는 걸까? 궁금하면서도 동경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한 사람의 저자가 책 한 권을 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같은 직업군의 세 사람이 각자 에세이를 담은 것이 흥미로웠다. 프리랜서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잠시 프리랜서로 사는 기분이 들 것이다. 그것도 각자 다른 세 가지 삶으로.


이 책의 저자들은 프리랜서 중에서도 '에디터'라는 특정 직업에 속해있지만, 꼭 에디터가 되고 싶거나 에디터를 위한 책은 아니다. 넓게 보면 고유한 개인으로써 살아가는 방식, 삶을 꾸려가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들에 가깝다.

나의 경우에는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작가는 에디터와 매우 비슷한 업태를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이 책의 표지에 쓰인 추천사는 소설가 김중혁이 썼다.) 정해진 날짜까지 마감을 하고, 제작사나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간혹 자신이 쓴 글과 작품을 알리기 위해 포트폴리오나 기획서를 쓰기도 하며, 혼자서 루틴을 정해 일을 해나간다. 그러면서도 사이 사이에 콘텐츠 생산을 위한 인풋과 소양을 쌓고 체력관리 및 마음 수양 (?) 해야하는 것도. 살아가는 시간이 곧 일하는 시간이고 출근 상태인 것이다.


“단순히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기보다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여러 일들에 도전하길 추천한다. 사심 없이 뿌리고 해낸 일들이 훗날 어떤 기회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생의 진리를 하나 더 깨달은 나는 해야 할 게 많아 오히려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중압감에 시달릴 때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하며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줄여 나간다. 그러다 보면 나를 짓누르던 불안도 조금은 사라지고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나는 아직 어딘가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고 일의 형태로 그것들을 하는 상태는 아니다.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을 글이지만 꾸준히 써야하고 나만의 루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그 과정이 매우 막막했고 오히려 나와의 약속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래서 어떻게 프로 작가가 될 수 있겠냐며 내 스스로를 질책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책은 실질적인 도움이 많이 됐다. ‘잠깐 진정하고, 우리 얘길 들어볼래? 프리랜서는 이렇게 살아.’ 라며 환상을 걷어낸 현실적인 프리랜서의 이야기와 특히 책 맨 뒤에 있는 부록 챕터가 길잃은 이에게 건네는 작은 지도와 같이 느껴졌다. ‘부록’ 챕터에는 글을 쓰다 막힐 때, 작업을 하다 안 풀릴 때 저자 분들이 쓰는 방법들과 프리랜서로 일하며 지키는 규칙과 복지에 대해 상세히 쓰여있다.


“회사는 다닐수록 나의 마음을 가난하게 했다. 조직에서 허기진 마음을 보상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경험만능주의자, 맥시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사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경험하고 싶은 것들이 내 주머니 속 월급을 털어갔다. 회사에서 뺨 맞고 월급에 화풀이해대는 격이었다. 이 모두는 내게 주어진 세상이 너무 좁은 탓이었다. 반 평 남짓한 책상 위에서 많은 일을 해내면서 나의 몸과 마음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회사에 있을 때와 퇴근 후의 삶이 분리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아니 분리를 하고 싶었다. 퇴근 후에는 취미 생활을 하거나 원래 본업으로 하고 싶은 일에 (글쓰기) 집중하고 외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을 하는 삶. 그러나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퇴근 후에는 일하는 동안 눌려있던 긴장과 스트레스, 피곤함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본격적인 내 ‘일’을 시작해보기도 전에 대충 밥을 먹고 잠을 자기 바빴다. 퇴근을 하고 나서 지친 체력으로 더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몸은 하나인데 두 가지 삶을 꿈꾸다니. 퇴근 후에도 나는 나였던 것이다.

일과 나의 삶이 하나로 뭉쳐진 채 살 수 밖에 없다면, 어떤 일을 하며 살면 좋을까. 그 고민을 품은 채 일을 했다. 결국 내가 생각만하고 주저하던 삶을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반)백수로 살고는 있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나의 멘탈과 체력 관리가 주된 업무고 매출은 0이지만... 혼자서 셀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때론 실패하기도 하고, 여행을 하거나 책과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스트레스보다는 되려 보람을 느끼게 한다. 조직 생활이 그닥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더 이상 도망칠 구석도 없었다.


아직은 프리랜서 LV.0인 상태지만 언젠가는 세 분의 에디터님처럼, 만렙 프리랜서가 되고싶다. 결국은 나와의 싸움, 시간과의 싸움이다. 그 시간과 노력들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나를 떠나지 않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는 것이 프리랜서로 사는 것의 장점이 아닐까. 유일한 사장이자 직원인 나의 시간을 잘 관리하고 복지를 잘 해주는 것은 한 사람 분의 인생을 관리하는 것과 참 많이 닮았다.


“안정적인 프리랜서 생활은 결국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된다. 말하자면 건강하게 살자는 거다. 혈혈단신으로 춥고도 가혹한 야생을 살아가려면 조금 덜 불안하고 덜 흔들리기라도 하자고.”


( 자이언트북스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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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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