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쌓는 마음 마음의 지도
윤혜은 지음 / 오후의소묘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헬무트 씨가 일기를 건넨 것처럼, 글쓰기 클래스의 박 선생님이 자신의 일기 묶음을 건넨 것처럼. 윤혜은 작가가 정성스레 모아둔 두꺼운 일기 모음을 건네받았다. 그의 일기를 읽을 수 있는 독자로 선택된 것은 귀중한 행운이었다.


“덕분에 나는 일기장 앞에서 조금 더 시시콜콜해졌고 이 기록에는 권태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나로부터 도망쳐 온 이곳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건 정말로 내게 없구나,라는 서늘한 확인을 더해가던 나날들. 쓸데없는 것들로 터질 듯한 캐리어처럼 나는 도무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방향으로 구성돼 있다는 자학을 멈추기 어려운 밤에, 한 장씩 넘겨본 헬무트의 일기장은 곤두박질치는 자아 앞에 둥근 방지턱을 만들어주었다.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여유, 그로 인해 다른 길로 빠져볼 수 있는 가능성을 헬무트는 이미 내게 몇 번이고 알려주었다."


게으른 나도, 유일하게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일 중 하나가 바로 일기를 쓰는 일이다. 방 한켠엔 스무살 무렵부터 작년에 썼던 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둔 박스가 있고 ‘Notebook’이라는 어플에 2017년 부터 띄엄띄엄 쓴 일기를 모아두었다. 그리고 올해 선물받은 스타벅스 데일리 다이어리까지.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행위는 그 자체만으로 삶을 조금 견딜만하게 해주었다. 일기를 쓴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일까. 분명 나는 무언가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 지금도 글쓰기를 놓지 않을 수 있었는데도 일기 쓰기는 양치질, 물 마시기 같은 일상의 행위의 범주로 치부하곤 했다. 일기의 진가는 그것들이 쌓이고 지난 날의 기억이 흐릿해졌을 때쯤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일기들도 훑어보게 되었다. 매일 매일 변화없이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은 과거의 내가 바라던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궤적이 보였다. 잘 살아내고 있구나,하는 안도감을 주었다. 일기장은 하루를 망쳐도, 세상에서 제일 못나고 게으른 것 같아 속상해도, 좋은 사람들과 충만한 시간을 보내다 와서 달뜬 마음이어도 언제나 묵묵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야말로 ‘시시콜콜’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 그래서 지겨워지지 않는다.


<매일을 쌓는 마음>을 읽으며 지내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하루 치의 삶을 더 꽉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생겨났다. 작가가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그럴까. 자연스럽게 그런 태도가 전달되었다.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감정들, 내 안에 생겨나는 미묘한 변화까지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장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고서야 나올 수 없다. 다소 납작해진 마음으로 속도와 결과에만 치중하다가, 이젠 넉넉해진 마음과 시야로 천천히 걸어가듯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래로, 소설 읽기를 멈춘 적은 없으니까. 아주 느리고 미약하게나마 쓰는 운을 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소설을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이유를 물은 적도, 의미를 찾은 적도 없지만. 계속,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을 만큼 간헐적인 시도뿐이지만, 그저 ‘나도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친 뒤로는 그 순간으로부터 결코 멀어지지 못하는 자신으로 반복해서 돌아올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요즘 소설을 쓰고 있다. 시나리오도, 소설도, 에세이도 잘 쓰고 싶은 욕심 많은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자신이 없는 소설을 ‘그냥’ 쓰고 있다. 친구들과 마감일을 정해서 짧은 소설을 쓰기도 하고, 올해 다가올 소설 공모전에 힘 닿는 데까지 도전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냥, 잘하든 못하든 쓰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초반 몇 문장 조차 쓰지 못하고 덮어두기 일쑤였다. 한 문장 다음에 또 다른 문장. 그것들을 어떻게 이어나가야할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것은 좋았다. 쓰지 않아도 읽는 것은 순수하게 즐거워서 계속하고 싶었다. 쓰는 일도 조금은 즐기며 할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작년에는 지원한 시나리오 공모전에 모조리 다 떨어졌다. 초라한 나의 현위치를 확인했다면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오히려 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재미로 소설을 써볼까? 이야기를 만드는 일로 돈을 벌고 싶다는 속내를 걷어내자 마음이 한결 가뿐해졌다. 재밌게 읽는 것처럼 쓰는 것도 그렇게 해보자고. 공모전에 내보고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왜 굳이 쓰는 것을 놓지 못하는지 나도 알 수는 없다. 다만 이 책의 문장에서 그 이유를 가늠해볼 뿐이다. ‘쓰고 싶다’라는 마음과 눈이 마주쳐버린 안타까운 운명인 거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줄곧 소설가라고 썼다. 그 아이에게 ‘너는 소설가가 되지 못할 거야.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넌 아마도 미래에 소설가가 되어 있을거야. 꾸준히 쓰다 보면!’ 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이루지 못한 무수한 꿈들 중에서 그것마저 제대로 해보지 않고 도망친다면 앞으로 마주할 미래의 나는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고개만 떨구고 있는 비겁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날 쓸 수 있는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내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쓰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언제나 간절한 마음보다 커다랗기를 바라는 것뿐. 그럼 도망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너무 간절해지면 무서워진다. 안 되면 어떡하지, 망하면 어떡하지, 어떡하지의 늪에 빠져버린다. 아무 것도 쓸 수 없는 나날들이 이어진다. 두려움으로 이어나간 글은 재미가 없었다. 그저 잠시 아무 것도 쓰지 않아도 된다며 약을 먹듯, 책을 읽는다. 이 책은 그럴 때 읽으면 아주 좋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하물며 일기라도 매일 매일. 작가가 차근 차근 쌓아올린 사유로 꽉 찬 문장을 읽어내려가면서 ‘좋아하는 마음’이 회복되어가는 게 느껴진다.

쓰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성실히 해내는 작가는 도망치지 않고 오롯이 시간을 지나오는 법을 알려준다. 쓰는 일이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왜 나는 알지 못했을까.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떠오른 책은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이었다. 쓰는 사람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들이 꾹꾹 눌러담겨 있는 모양이 닮았다. 그래서 윤혜은 작가의 소설도 기대가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조금 더 삶을 애정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애정할 수 있는 사람.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고 자책만 했던 사람에서 그래도 나는 어찌됐든 일기를 쓰고 있으니 잘 살아가고 있는 거 아니냐고, 글을 쓰는 한 외롭지 않다고. 그런 확신이 생겼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나만은 내가 미워할 수 없는 나였으니까. 심지어 스스로를 비아냥거리는 글일지라도 쓰는 나는 내 편이 되어 주고 있다는 안심이 있었다. ‘그런 너를 내가 알아.’ 아무도 해주지 않는 말을 나에게 돌려주는 시간이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