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민음사 때문에 미치겠다.

표지를 왜 이렇게 사고싶게 바꿔서 내는 거냐...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랑 <제인 에어>도 질러놓고 못 보고 있는 마당에 또 저렇게...

고민되는 김에 번역 비교.

<프랑켄슈타인> 때만큼 자세히 하기는 힘들어서 첫 페이지만 살펴봤다.


비교 대상은 민음사/문학동네/을유문화사 세 권.

역자를 간단히 살펴보면,

민음사의 김종길은 고려대 영문과 명예교수이다. 주로 시를 번역한 듯한데, 이 작품도 시적인 면이 있어 번역을 한 듯하다. 영미문학연구회에서 그의 역본을 좋은 번역으로 선정한 바 있다.

문학동네의 김정아는 비교문학과에서 영문학을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을유의 유명숙은 서울대 영문과 교수이다. 이분의 역본 역시 좋은 번역으로 선정된 바 있다. 다만 이분이 영국 사투리의 느낌을 살린답시고 우리나라 사투리로 옮기는 경향이 있어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1


참고로 제목은 '폭풍의 언덕'보다는 '워더링 하이츠'라고 옮기는 게 옳다는 것이 중론이다. 읽어보지 않아 판단은 못 하겠다...2 



 

1801. - I have just returned from a visit to my landlord -

김종길) 1801- 집주인을 찾아갔다가 막 돌아오는 길이다.

김정아) 1801. 방금 주인 양반 댁에 다녀왔다.

유명숙) 1801. 집주인을 방문하고 오는 길이다.

 

 

the solitary neighbour that I shall be troubled with.

김종길) 이제부터 사귀어가야 할 그 외로운 이웃 친구를.

김정아) 이제 그는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유일한 이웃이다.

유명숙) 나를 성가시게 할 유일한 이웃인 셈이다.

 

* solitary의 번역이 외로운/유일한 둘로 갈린다. 책을 안 읽어봐서 히스클리프가 부딪쳐야 할 외로운 이웃인지 유일한 이웃인지는 잘 모르겠다여러 한영/영영사전을 검토해보면 이 단어가 only보다는 alone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only의 뜻으로는 주로 부정문/의문문일 때 쓰인다는 설명이 있는 것으로 볼 때 외로운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④⑤번 문장 내용을 보면 유일한 이웃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참고로 문예출판사의 이덕형과 홍익출판사의 신현숙은 '고독한'으로 번역했음)

 한편 김종길만 왜 유독 trouble을 사귄다는 표현으로 의역했는지 좀 의문이다. 번 문장의 내용을 토대로 추측을 해보자면, 화자(I) 입장에서 곤란을 겪는다는 게 사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This is certainly a beautiful country!

김종길) 여긴 확실히 아름다운 고장이다.

김정아) 경치 좋은 시골인 것이다!

유명숙) 정말이지 아름다운 고장이다!


  

In all England, I do not believe that I could have fixed on a situation so completely removed from the stir of society.

김종길) 영국을 통틀어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이렇게 완전히 동떨어진 곳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김정아) 영국 땅을 전부 뒤져본들, 이다지도 완벽하게 세속잡사에서 동떨어진 곳이 어디 있으랴.

유명숙) 잉글랜드를 통틀어 세상의 소란에서 이보다 더 동떨어진 곳을 골라잡을 순 없었을 것 같다.

 

 

A perfect misanthropist's heaven:

김종길) 사람을 싫어하는 자에겐 다시없는 천국이다.

김정아) 더할 나위 없는 염세가의 천국이로구나.

유명숙) 염세가에게는 다시없을 천국인 듯.

 

 

and Mr. Heathcliff and I are such a suitable pair to divide the desolation between us.

김종길) 더구나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이 쓸쓸함을 나누어 갖기에 썩 알맞은 짝이다.

김정아) 적막강산을 반씩 나누어 가질 히스클리프 씨와 나는 너무나도 어울리는 한 쌍이로구나.

유명숙) 더구나 히스클리프와 나는 이러한 적막감을 함께 나누기 딱 알맞은 한 쌍이다.

 

* suitable과 to 부정사구의 해석에 약간 차이가 있다. 김종길과 유명숙은 to divide 이하가 suitable을 꾸민다고 보았고, 김정아는 주어(Mr. Heathcliff and I)를 꾸미는 것으로 번역했다. 즉 전자는 부정사를 부사적으로, 후자는 형용사적으로 본 것인데, 개인적으로는 전자에 한 표를 주고 싶다. <suitable + 명사 + to 부정사>가 한 세트가 되어 '~하는 데 적합한 (명사)'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이덕형과 신현숙도 이렇게 번역함)

 

 

A capital fellow!

김종길) 멋진 친구!

김정아) 대단한 친구다!

유명숙) 멋진 친구다!

 

 

He little imagined how my heart warmed towards him when I beheld his black eyes withdraw so suspiciously under their brows, as I rode up, and when his fingers sheltered themselves, with a jealous resolution, still further in his waistcoat, as I announced my name.

김종길) 말을 타고 다가가는 나를 보고 그의 시꺼먼 두 눈이 눈썹 아래에서 미심쩍게 찌푸려지는 것을 봤을 때, 그리고 내가 이름을 대자 그의 손가락들이 잔뜩 경계하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갔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품었는지 그는 상상도 못 했으리라.

김정아) 내가 말을 세우자 의심이 가득한 그의 검은 눈은 눈썹 뒤편으로 움푹 들어가고, 내가 이름을 댔는데도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는 그의 손은 조끼 안쪽으로 더욱 깊이 파고 들어가니, 그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나는 그에 대해 적잖이 호감을 느꼈던 것이다.

유명숙) 내가 말을 타고 다가가자 검은 두 눈이 의심쩍다는 듯 눈썹 뒤로 물러서고, 이름을 밝히자 손가락이 단호한 경계심을 드러내며 조끼 속으로 더욱 깊숙이 숨어드는 것을 보고 얼마나 큰 호감이 솟아났는지 그는 짐작조차 못할 것이다.

 

* when의 번역에 다소 차이를 보인다. 뉘앙스가 살짝 다르게 느껴지나, 뭐가 맞았다 틀렸다 할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when이 주는 뉘앙스, 그리고 한글로 읽을 때의 느낌을 고려했을 때 김종길처럼 그냥 ‘~할 때로 번역하는 게 나아 보인다.

 그리고 ride up의 번역도 좀 갈리는데, 김정아만 말을 세웠다고 해석했다. 영영사전에 ' to approach someone, riding'3이라 돼 있는 걸로 봐서는 김종길이나 유명숙의 번역이 더 좋아 보인다.

 

 

# 전반적인 느낌


많은 내용을 본 게 아니라 눈에 띄는 오류를 찾긴 어려웠다. 하지만 번역 스타일은 확실히 차이가 있어 보인다.

 

김종길) 모범생의 정직한 번역 같은 느낌. 좀 문어적이나 가독성은 괜찮은 것 같다.

김정아) 한껏 멋을 내려고 노력한 느낌. (세속잡사, 염세가, 적막강산 등...)

유명숙) 대체로 김종길과 유사하나, 보다 문체가 간결한 느낌.

 

 

 

 


 

1. 개인적으로는 사투리 쓰는 테스를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기 때문에 불호...
2. 다만 유명숙의 설명 중 'Wuthering Heights'가 집 이름이기 때문에 '언덕'이라고 번역한 게 잘못이라는 부분은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집이라도 얼마든지 언덕이라 이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에일린의 뜰'이라는 아파트가 존재하지 않는가.
3. http://idioms.thefreedictionary.com/rid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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