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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 - 인류 최초의 신화 ㅣ 현대지성 클래식 40
앤드류 조지 엮음, 공경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10월
평점 :

이 책은 받자마자 표지부터 두근거리게 만든 책인데요. 그 이유는 제가 역사 및 인문학 덕후이기 때문입니다. 맨 뒷장을 펼쳐서 현대지성클래식 리스트를 보는 순간! 어맛! 이 완독 챌린지는 해야 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대지성 클래식은 지금까지 총 40권 밖에 출시되지 않았고 각 권당 페이지 수가 꽤 됩니다. 역사덕후에 벽돌책 덕후의 취향에 엄청 부합하는 책 리스트였어요.

그래서 #현대지성클래식완독챌린지 를 위한 새 노트를 바로 사버렸지 뭐예요. 그리고 그 첫 번째로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신화입니다. 설형문자를 점토판에 새겨 돌처럼 굳힌거라 판본의 유실이나 부패 확률이 적어 최근에 더 많이 발굴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공란으로 남아있던 부분이 점점 채워지고 있다네요. 현대지성에서 이번에 출판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지금까지 출토된 판본의 최대 완역본이라고 해요. 길가메시 서사시 자체는 엄청 긴 분량은 아닙니다. 이 책이 조금 두꺼웠던 이유는 여러 판본을 대조 번역하고 주석을 붙여 놓았기 때문이에요.

얼마 전 사피엔스에서 함무라비 법전 해석본과 설형문자 판본을 복사해서 다시 적어내는 수도생?들에 대한 글귀가 읽었는데 주석을 읽다 보니 같은 내용이 나오더라고요. 그건 설형문자를 배우는 학생들이 혼나는 대목이었어요.
문 반장은 "왜 내 허락 없이 나갔느냐"라고
말하면서 날 때렸다.
물 반장은 "왜 내 허락 없이 물을 먹었느냐"라고
말하면서 날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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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메시 서사시도 여러 판본이 존재하듯 설형문자를 배우는 학생들이 점이나 글자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점토판에 새기는 게 중요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많이 혼나기도 한 것 같고 덕분에 판본도 많이 남아서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되고요. 이 대목을 읽다 보니 예전에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소설에서 오스만제국에서는 개인의 개성보다는 선인들이 그렸던 그림을 그대로 재현하는 게 실력이라고 하던데 왜 그런지 조금 이해가 되더라고요.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왕족의 영웅담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것이 주 목적이었던 고대에서는 인쇄하듯이 그대로 베끼는 게 중요했을 테니까요.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성서에 나오던 대홍수 이야기도 나오고 그리스 로마신화에게 본 것과 같은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신들과 인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스 로마신화가 신들이 인간과 같은 형태를 가지고 질투와 분노 사랑을 한다고 해서 인본주의의 상징으로 보는데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어보니 그 시초는 오히려 길가메시 서사시인 거 같더라고요. 이 서사시에 나오는 신들도 욕망을 느끼고 분노하고 복수하는 형태로 인간사에 개입을 합니다. 또 길가메시도 신과 인간의 혼혈로 나오고요. 길가메시 서사시를 읽으면서 일리아드가 생각났어요. 일리아드인 아킬레우스가 인간과 신의 혼혈이었고 왕족으로 나오잖아요.

그리고 길가메시도 엔키두라는 소년을 만나면서 그와 여행을 하고 친분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죽음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게 되지요. 이 대목에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가 생각났어요. 매들린 밀러의 소설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보면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킬레우스도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아 결국 얼마 안 있다 죽거든요.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엔키두와 길가메시의 사이를 동성애였다고 언급한 부분은 없지만 점토판과 설형문자라는 한계에 불구하고도 두 사람 사이의 특별한 친밀함이 서사시에서 느껴지거든요.
이제 책을 한 달에 10권씩 꾸준히 읽은 지 5개월 차에 접어드는데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점점 실감 나고 있어요. 서로 다른 분야의 책들을 크로스 체크해 보면서 새로운 사실들을 덧붙이는 재미가 아주 쏠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