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 트로이 전쟁에서 마케도니아의 정복까지
김진경 지음 / 안티쿠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는 분명 고대사의 전문가이며 고대 그리스사에 대해 충분한 학문적 권위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대 그리스 역사 관련서를 이미 읽고 선행 학습이 된 사람의 입장에서는 쉽게 읽힌다. 


100자평에 재미없다고 쓴 사람이 있는데, 취향은 존중이지만 그렇게 재미가 중요하면 시오노 나나미 같은 사람이 쓴 비역사서인데 역사서인 척 하는 책을 읽으면 된다. 대학 1학년 학부생 대상으로 한 교양 강의가 이 정도 내용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고 나는 본다. (물론 강의를 해주는 역사 전문가가 옆에 있다는 전제 하에서...그렇다...죄송)


그런데 문제는 이 책을 원래 저술의 목적에 맞추어서 입문서로 평가할 때 발생한다. 


우선 저자가 무슨 착각을 했는지 간혹 가다가 설명도 없이 새로운 용어가 튀어나온다.


예를 들면, 11쪽에 난데없이 등장하는 "프라트리아"는 클레이스테네스의 부족 개편 이전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지역 형제단을 말하는데, 처음에는 혈연 집단인 씨족에서 출발하였으나 당시에는 더 이상 혈연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더 뒤에 나오는 메가라 조례 부분도 설명이 빈약하다.)


추측이지만, 가끔 가다가 저자는 자신이 대학교에서 강의하던 시절에 설명했던 용어를 이미 책 속에서 설명한 용어로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책 속에 있는 지도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책 속의 서술에는 등장하는 지명이 지도에는 안 나타난다. 나는 이 책 읽으면서 다른 고대 그리스사 책에 있는 지도와 영문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지도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글자로 된 지명을 읽기만 하는 것과 그 위치를 정확하게 이미지로 그리면서 읽는 것은 이해나 기억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낳는다. 이 점에서 보면 교육적으로도 이 책에는 문제가 좀 있다.


그리고 역사적 유물의 사진만 수록할 것이 아니라 그 발굴 장소나 제작 추정 시기, 소장 박물관 등과 같은 정보를 쓰는 것이 상식인데 그딴 건 다 무시해버렸다. 이거 저작권상으로도 문제가 있다.   


종종 역사적으로 논쟁거리가 되는 주장을 서술할 때 특정 입장을 그냥 단순히 참인 것처럼 서술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예를 들어, 저자는 크리티아스가 소크라테스의 제자라고 말하지만 이건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리고 오류도 있다. 263쪽에서 저자는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사고라스를 혼동한다. 그 전에 페리클레스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반복되는 부분인데 앞에 했던 말을 스스로 뒤집는 꼴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전거나 출처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는 것이다. 


학자가 뭔가를 설명할 때는 본인이 직접 발견한 것이 아닌 이상 정확하게 출처를 인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는 단 한 개의 제대로 된 문헌 인용도 없다!!!

이건 학자로서의 지적인 정직성을 의심스럽게 만들 정도의 큰 오점이다. 대중적인 독자는 별 신경 안쓰겠지만, 제대로 역사 공부를 해보려는 학자적 자세를 가진 사람 입장에서 보면 거의 충격적이다. 참고 문헌 목록 하나가 없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저자가 기껏 한다는 인용이란 학자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뿐인데, 덕분에 나는 학자 이름+영문 주제어를 구글에 검색해서 문헌 서치를 하면서 책을 읽어야 했다. 다시 말하지만, 학자적인 자세로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필요하지만 그냥 대충 교양 좀 쌓아보겠다는 독자에게는 이런 수고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런 서술을 하는 근거가 정확히 무엇인지, 다른 역사서의 서술과 비교하면서 따져보고자 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이게 아주 중노동이다. 


마지막으로 오타가 좀 있다. 특히 조사가 잘못 쓰인 경우들이 꽤 있는데, 편집자는 뭘 한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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