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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변명 -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의 불편한 진실
베터니 휴즈 지음, 강경이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책을 번역하면서 번역자가 고생한 것 같기는 하다. 이것 저것 조사해서 역자주를 많이 달았다는 것은 좋다. 다만 역자주에서 제공하는 정보의 출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마틴의 <고대그리스사> 정도 말고는 출처 인용이 없다.) 원서에 있는 참고문헌목록의 2차 문헌 목록은 아예 수록하지도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책이 완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서는 544페이지며 한국어로 완역을 했다면 그 두 배 정도, 대충 천 페이지가 넘어갔을 것이다. 역자는 소위 <프롤로그>로 제목이 달린 앞부분에서 작가가 쓴 상당부분의 소개글을 그냥 거의 통째로 삭제해버린다. 원서에는 'Introduction', 'The dramatic story of Socrates -sources and approach', 'Dramatis Personae'의 부제가 달린 상당한 분량의 소개글이 있다. 자신의 저술의 기초가 된 문헌 출처와 자신의 연구 방법 등이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데, 이 부분이 다 날아가 버렸다. 아마도 번역자나 편집자는 이런 부분을 일일히 다 번역하는 것은 쉽지도 않고, 번역서를 지나치게 길게 만든다고 생각해서, 대중용 번역서를 만든다는 목적 아래 다 번역하지 않고 한방에 뭉뚱그린 것 같다. 뭐 이해는 된다. 그러나 나 같이 의심되면 출처를 찾아보고, 다른 자료와 대조해보고, 원저자가 이 부분은 어떤 방법론이나 의도에 근거해서 출처를 해석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독자에게는 치명적이다. 미주도 선택적으로 번역되었으며 상당부분이 삭제되었다. 특히 짜증나는 것은 원저자가 인용문들의 출처를 밝힐 때 학계의 정확한 인용 관행에 따라서 페이지 번호를 표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자가 페이지 번호를 다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플라톤의 대화편들의 스테파누스 쪽수가 다 날아갔다.
중간중간 번역자는 문장들, 심지어는 긴 단락들을 그냥 번역하지 않고 넘어간다. (나는 지금까지 아마존 킨들로 구입한 원서와 번역서를 비교해 보면서 원서의 20퍼센트 정도를 읽었으며, 여기까지 대조해본 결과가 이거다.)
어쨌든 정말 중요한 점은 역자가 정확하게 이 책은 완역이 아니라 편역임을 밝혔어야 했다는 것이다. 편역서를 읽는 것과 완역서를 읽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적인 정직성은 학계에만 적용되는 가치 기준이 아니다. (예를 들자면, 천병희 교수의 원전 완역의 <일리아드>를 읽는 것과 중역/편역판을 읽는 것의 차이를 한 번 생각해보라.) 뭔 대중서 가지고 뭘 그리 깐깐하게 구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런데 원저자는 자신의 책이 편역된 것을 알고는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번역서가 잘 읽힌다는 점에서 좋고, 책의 두께와 과다한 정보(?)를 과감히 포기함으로써 빠른 시간에 완독했다는 보람을 추구하는 다수의 독자들의 소위 '니즈'에 부합했다는 점에서는 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제대로 공부해보려는 사람에게는 결코 좋은 책이 아니다.
과감하게 요약: 맘에는 안 들지만 번역자 수고했음. 빨리 빨리 잘 읽힘. 그런데 완역 아니고 편역인데 왜 이야기 안해줌? 그리고 고전 인용 다음에는 제대로 해주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