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추리 소설을 읽은 것 같다.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책을 덮지 못한 건 오랜만이다.뭐랄까, 대한민국 육군 병장인 아들과 대학교 3학년 딸이 있는 내게 이 책은 아들은 '귀랑'이 처럼 눈밖에 나게 키우지 말아야 하고, 딸은 '꼭지'처럼 여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남자들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한다는걸 가슴 깊숙이 콕콕 박히도록 가르쳐줬다. 어릴때 몇번의 성추행을 당해본 나도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지만 그때의 짧은 시간의 기억만은 사진 찍히듯 선명하게 남아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꼭지에겐 유정이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지만 그때 나는 대개의 평범한 여자들처럼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앓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나도 세상을 바라는 시선이 달라졌다.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괴롭히지 말라고, 남자와 똑같은 인격체로 대하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50대 중반을 넘어선 성은영 작가는 '시력이 허락하는 날까지재미있고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는데 어수선한 지금의이 사회에 의미있는 소설을 쓰는 그녀가 어느 누구보다 존경스럽다. 그녀가 책 첫페이지에 친필로 남겨준 '날카로운 시선, 따뜻한 가슴'이란 글은 내 삶의 목표로 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가며 그녀의 다음 소설을 기다리고 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