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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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재의 6개 단편이 실린 하루키의 소설집. 새로 쓴 작품들은 아니고, 19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의 단편들을 선별해 모은 책이다. 그동안 하루키의 장편은 많이 읽었는데 단편은 오랜만이라 색다른 느낌이면서도 그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일독이었다.


모두 현실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환상 소설에 가까웠고, 확실히 90년대 유행했던 일본문학의 트렌드를 따르면서도 하루키 특유의 세계관과 문장, 어딘가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결합돼 더욱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다.


우선 제일 알쏭달쏭했던 표제작 <TV 피플>. 주인공에게만 보이는 듯한 'TV 피플'들이 느닷없이 방문해 집에 TV를 설치하고, 주인공의 아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정말 돌아오지 않을까? 주인공에게만 인식되는 TV 피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잠>이라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는데, 갑자기 생긴 불면 증상으로 몇날 며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여자가 남편과 아이를 보며 생소한 감정을 느끼고 이내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여러 모로 상당히 스트레스 받고 있는 여자의 상황을 연상시켜서 나까지 괴로웠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개연성은 뭐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러운 결말을 가진 챕터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게 하루키가 추구한 '문학'인 것 같고, 따라서 실린 작품들 자체가 전반적으로 또렷한 해석 보다는 추상의 느낌으로 받아들이면 더 재밌게 느껴지지 않을까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그게 이 단편집의 진실된 포인트이지 않을까……. 해설이 어려운 아방가르드한 현대 미술 같다는 생각도 들고, 따라서 하루키가 자아낸 현실 속 환상에 주목해서 나만의 해석을 따라가 보는 재미가 있는 단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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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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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한 안드레 애치먼의 신간 로맨스 소설이 출간됐다~ <여덟 밤>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이십대 남녀의 8일간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느린 호흡과 섬세한 감정 묘사로 옛시절 첫사랑의 순수함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홀로 있을 장소를 찾다 들어간 트리 뒷편. "나 클라라예요."라고 말하며 다가온 여성에게, 프란츠는 금세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어딘가 독특하고 유머러스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대화를 나누며 첫 만남의 밤을 보낸 그들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가까워진 듯하면서도 멀리 있는 듯한 클라라의 말과 행동에 프란츠는 기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한 여덟 밤을 보낸다. 마음 놓고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금방이라도 다른 이성에게 떠나갈 것 같은 클라라에게 느끼는 불안함 등, '사랑'에 얽히는 모든 감정을 안드레 애치먼은 한겨울 반짝이는 뉴욕 풍경과 함께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서로를 탐색하며 숨기고 있던 것들과, 그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순간들을 맞이해야만 했던 우정과 사랑 사이에 놓인 연인 아닌 연인들. 상당한 분량 덕분에 '밀당이 너무 심한 거 아냐?' 싶다가도 '아, 얘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라고 납득하게 되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만큼 사랑에 빠진 사람의 심리가 아주 자세하게 드러난다고 볼 수도 있겠다. 분명 이 주인공들은 20대인데, 생각의 깊이가 남달라…… 현대에 유행하고 있다는 가벼운 만남과는 전혀 다른 모양새를 띠고 있어서, 더욱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듯.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화려한 파티에서 만난 상대와 평생 잊을 수 없을 로맨스라니……. 꼭 영화 같은 장면에(물론 소설이지만), 맘속 한켠이 두근두근했다. 로맨틱한 사랑을 해본 사람들, 혹은 꿈꾸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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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망자, ‘괴민연’에서의 기록과 추리
미쓰다 신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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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미쓰다 신조 ㅠㅠㅠ!! 제가 이 날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아시나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걷는 망자,,, 내게로 걸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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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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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받는 작가 한나 베르부츠의 <우리가 본 것>은 초판 65만 부가 판매된 네덜란드 베스트셀러, 게다가 이언 매큐언이 추천사를 준 화제의 소설이다. 이력조차 화려한데 결말까지 완독한 순간 무서운 찜찜함이 뇌리에 깊이 박혀 아주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듯하다.


매일같이 무수히 쏟아지는 콘텐츠들, 요즘 시대에 SNS를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심지어 업로드 되는 콘텐츠들 모두 유익하거나 정상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의 화자이자 주인공 케일리는 이 유해 게시물을 감수하고 분류 및 삭제하는, 상당히 피곤한 직업을 가진 인물이다.


유해 콘텐츠 감수자들에게는 항상 '뭘 보는데?' '어떤 게 제일 최악이었는데?'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어 업무 외 시간에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강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항상 자극적인 영상을 보다 보니 도덕과 비도덕의 경계도 느슨해진다. 딱 봐도 잔인하고 끔찍한 영상임에도 만에 하나 교육적인 의도가 있는 콘텐츠라면, 그것은 유해 게시물로 분류되지 않는다는 것. 이 애매모호한 법칙 속에서 케일리를 포함한 직원들의 정신이 점차 상해 가기 시작한다.


비록 힘들고 고된 작업장이지만 좋은 동료들이 있고 연인까지 만나게 되지만, 연애의 결말은 꽤나 충격적이다. 레즈비언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던 케일리는 차별과 폭력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어 본 사람이고, 게다가 업무까지 고강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안겨 주니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객관성을 잃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러운 추측도 해 보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해하고 유해한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가 과연 존재하기나 할지, 여러 방향에서 고찰하게 만든 소설이다.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현대에서 문제시 되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읽는 이로 하여금 시사적인 비판을 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베스트셀러의 힘을 느꼈다. 진심으로, 일독을 권하고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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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
이요하라 신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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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3킬로미터>라는 제목만 보고, 어떤… 외로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향해야 할 희망에 대한 다소 감성적인 단편들이 실리지 않았을까 했는데, 이 예상은 어느 정도 들어 맞았고 내용은 그 이상을 뛰어넘었다. 정말이지 무척 좋았던 일본 현대 소설로 내 기준 올해의 책 순위권 안에 들었다♥


작가가 과학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우주, 광물, 산 등 과학적이고 자연적인 것들이 주요 소재로 나온다(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절대 어려운 과학 지식이 나오진 않는다!) 총 7편의 모든 단편들이 저마다 심금을 울려서 뭐가 제일 좋았다거나 순위 뽑기가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눈 결정과 관련된 두 번째 단편이 많이 마음에 와닿았다 ^_^


우선 표제작. 인생도, 도박도 계속 지고 있는 듯하다는 의미심장한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남자는 왠지 모든 걸 포기한 것 같은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한 택시에 올라탄다. 눈치가 빠른 택시 기사는 남자에게서 위험한 선택의 냄새를 느끼고, 한밤에 동행을 요청한다. '달'까지 3킬로미터라는 바로 그곳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각각의 사연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고독이 짙게 다가왔던 작품이었고, 나머지 이야기들도 궤는 비슷하다. 다양한 연령대의,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나오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자연을 바라보며 교감한다. 마치 실제로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의 고민이 마치 내 일처럼 다가오고, 어느새 그들에게 이입해 버린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좋은 문장도 무척 많아서, 오프라인 독서록에도 그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소설 :) 너무 신파적이지도 않고, 건조하지도 않은 따뜻한 단편들이 마음에 오래오래 남을 듯하다. 이요하라 신의 또 다른 작품 읽을 의향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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