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있는 사람들
존 F.케네디 지음, 배철웅 옮김 / 민예사 / 2001년 1월
평점 :
품절


이제는 이 책을 쓴 사람이 케네디가 아니라 대필작가라는 설도 있지만,

누가 썼든 그 배경과 관계없이 이 책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대통령이

되기를 열망하던 정치후보생이 (또는 그 대필작가) 쓴 이 책의

주인공은 대통령이 아닌 8명의 상원의원이다.    민주주의의

출발은 국민 대표자인 의회라는 사고방식이다.  곱씹어볼수록

탁월한 포석이다.  더우기 그 촛점은 그들의 의회경력에서 두고두고

칭송받는 부분이 아니라 이미 거의 결정된 사안을 반대함으로써

당시 크나큰 비난을 혼자 뒤집어 썼던 스캔들같은 부분이다.

특히 미국 대통령 탄핵안과 같은 경우, 몇몇 반대의원들은 소속정당의

의지를 저버림으로써 자신의 정치생명을 끝장내고 비참한 노년을

맞기도 했다.  다수결의 횡포를 저지함으로써 보다 큰 의미에서의

민주주의를 수호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자신의 소속정당과 배치되는

선택을 했기에 파멸했다는 거다.

(미국 상원의 대통령 탄핵안은 우리와는 달리 무기명투표가

아니다.  방청객이 만장한 가운데 한 명씩 공개적으로 찬반을

표시했다.  그 압력은 상상할 수 없이 컸던 것이다.)

 

당시의 미국 대통령은 요령없는 처신으로, 처음부터 불리했던

자신의 입지를 극도로 위태롭게 만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책을 추천하긴 어려웠다.  강력한 대통령중심제인

우리 사회와는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정권이 계속 민주화정권으로 자처하면서 작은 변화나마

누적되어 결국 지금과 같은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읽던 몇 년전만 해도 정말로 한국과는 관계없는

딴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오늘날의 어린 세대는

어찌 보면 정치이론을 빠르게 직접 습득하는 행운을 타고 났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자. 

 

이 책에 나오는 미국 상원의원들이 항상 고결했던 것은 아니다.

검은 돈과 연관된 의원도 있었고, 문제의 대통령 탄핵안 거부만

해도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 존경할 만한 위대한 대통령이었는지에

대해선 회의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과감한 선택을 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에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도록 했다.  

 

용어가 생소하고 번역이 좀 힘들어도, 어린 학생들과 아직

읽지 않은 성인들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귀야행 11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 잘라 이름표를 붙이자면 “귀신이야기”라고 할 만한 책이긴 한데, 칙칙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역겹지도 않아서 뒷맛이 좋은 책이다. 긴 인생 살다가 마음 도닥이며 조심조심 저승길 가는 노인네 뒷모습처럼 아련하게 슬프고 정이 간다고나 할까.

주인공 이이지마 리쓰는 일가친척은 물론이요, 드물게 거대한 전통주택에도 초자연현상이 잘 꼬이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외할아버지인 가규의 피를 이어받아 모두 어느 정도 심령능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긴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무당노릇 해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맨날 바로 코앞에 섬짓한 일이 앗 하고 닥쳐오는 바람에 그거 해결하기도 바쁜, 보통사람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정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일가족이다.

무언가 사건이 느닷없이 발생해서 모두 정신없이 휩쓸려 들어가고, 독자는 토막토막 얘기를 끼워맞춰서 진상을 반쯤 추측해보지만 그래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막판에 짠~하고 얘기가 뒤집어지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식으로 진상이 제시된다. 심령현상은 어찌어찌 해결되고, 주인공 리쓰가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 지켜보는 가운데 요괴와 인간은 다시 아련하게 아름답고 슬픈 구석이 없지도 않은 이별을 한다....

이게 백귀야행에서 회마다 되풀이되는 진행방식인데, 한 번 주욱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속 앞으로 돌아가서 아까 그 사람이 사실은 이랬구나, 이 얘기의 실마리가 앞에서도 나왔구나 하고 무릎치기를 되풀이하는 게 보통이다. 정신없고 어려워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트럼프 맞추기처럼 이런 과정이 산뜻해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좋다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연재가 계속되겠지.) 추리소설도, 공포물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백귀야행은 아름다워서, 슬퍼서 계속 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라진 배심원 존 그리샴 베스트 컬렉션 1
존 그리샴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미국에는 매년 한 권씩 베스트셀러를 내놓는 작가들이 있다. 살인으로 범벅이 된 범죄추리소설, 잘난 남자가 여자한테 믿을래야 믿기지 않을만큼 헌신적으로 반하는 연애소설 등등. 존 그리샴은 그런 다른 작가들에 비해 아주 담백하고 산뜻하며 인간미 넘치는 법정소설을 쓴다. 그렇지만 법정을 멀고 겁나게만 느끼는 우리에겐 그만큼 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드디어 이 책도 번역되었다.

전작들에 비해선 기발하고 톡톡 튀는 편이다. 미국에서 판결은 전문법조인인 판사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배심원단이 내린다. 일류변호사들은 이들에게 현란한 언변으로 유리한 증거를 제시해서 설득하고 판사는 교통순경처럼 규칙에 어긋나는 변론을 제지한다. 배심원단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건전한 시민들로 이루어지며 긴 재판기간 동안 방청한 뒤 승자를 결정해준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문법조인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배심원의 선출 과정에서부터 법조인들은 갖은 방법을 써서 보다 유리한 인원을 뽑는다. 재판 동안에도 결격사항이 있는 배심원은 탈락하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광고기획처럼 사람의 심리를 세세히 분석해서 배심원을 감정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이 내내 발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런 전문법조인들의 머리 위에서 한수 앞선 전략으로 배심원을 조종할 수 있다면? 아주 오랜 기간과 발각될 위험을 무릅쓰고 누가 그런 일을 할까? 이 책은 여기서 착안해서 살을 붙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어느 영리한 젊은이가 배심원을 조작해서 대박을 터뜨리는 것만으로는 뭔가 미흡하겠지만, 보다 큰 다른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어도 적의 돈을 챙겨서 튀지는 않는다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주인공의 모습은 밉지만은 않은 소악당같다. 존 그리샴이 내내 그리는 주인공들은 이런 모습이다. 거대한 부패에 맞서서 자기 생존을 지키면서 활약하는 현대의 다윗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마릴리온
J.R.R 톨킨 지음, 강주헌 옮김 / 다솜미디어 / 1997년 11월
평점 :
품절


무난한 모험담이었던 반지의 제왕에 비해서 실마릴리온은 천지창조가 나오는 시작부터 바로 반항과 패배와 대를 이은 도전의 이야기가 나온다.

창조주에게 도전해서 몰락하는 멜코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보석을 만드는 요정족, 그 보석을 빼앗기고선 탈환을 위해 창조주의 명령을 어기고 저주를 받으며 서역을 등지고 중간계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는 요정들,

숱한 영웅들이 가혹한 운명에 맞서다 위엄있게 스러지는 고난과 배신과 패배의 이야기 속에서 갈라드리엘, 루시엔, 엘윙같은 불멸의 등장인물들이 눈부시게 빛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라는 주인공 혹은 작가가 옮겨다닐 때마다 계속 판단착오를 해서 조금씩 더 심한 곳으로 떨어지는 이 이야기는 냉소적이고 싸늘한 유머감각이 불쾌하지 않을 정도로만 섞여들어가 있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 본다면, 이야기 전체는 지옥일주버스여행을 마치고 살아돌아온 사람의 회상기처럼 느껴진다.

갖가지 고생담과 비참함을 어깨를 으쓱해가며 늘어놓는 느낌. 밑바닥사람들에 대한 동정심같은 건 특별히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도 그 일부였지만, 그가 보기엔 세상사람 모두가 그 언저리에서 살고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