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11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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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잘라 이름표를 붙이자면 “귀신이야기”라고 할 만한 책이긴 한데, 칙칙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고 역겹지도 않아서 뒷맛이 좋은 책이다. 긴 인생 살다가 마음 도닥이며 조심조심 저승길 가는 노인네 뒷모습처럼 아련하게 슬프고 정이 간다고나 할까.

주인공 이이지마 리쓰는 일가친척은 물론이요, 드물게 거대한 전통주택에도 초자연현상이 잘 꼬이는 환경에서 자라났다. 외할아버지인 가규의 피를 이어받아 모두 어느 정도 심령능력을 가지고 있는 가문이긴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무당노릇 해서 돈 버는 것도 아니고 맨날 바로 코앞에 섬짓한 일이 앗 하고 닥쳐오는 바람에 그거 해결하기도 바쁜, 보통사람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으니. 정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일가족이다.

무언가 사건이 느닷없이 발생해서 모두 정신없이 휩쓸려 들어가고, 독자는 토막토막 얘기를 끼워맞춰서 진상을 반쯤 추측해보지만 그래도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워진다.

그러다 막판에 짠~하고 얘기가 뒤집어지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식으로 진상이 제시된다. 심령현상은 어찌어찌 해결되고, 주인공 리쓰가 지쳐서 파김치가 되어 지켜보는 가운데 요괴와 인간은 다시 아련하게 아름답고 슬픈 구석이 없지도 않은 이별을 한다....

이게 백귀야행에서 회마다 되풀이되는 진행방식인데, 한 번 주욱 읽어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속 앞으로 돌아가서 아까 그 사람이 사실은 이랬구나, 이 얘기의 실마리가 앞에서도 나왔구나 하고 무릎치기를 되풀이하는 게 보통이다. 정신없고 어려워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고, 트럼프 맞추기처럼 이런 과정이 산뜻해서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좋다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연재가 계속되겠지.) 추리소설도, 공포물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백귀야행은 아름다워서, 슬퍼서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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