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 ( 박수밀 / 돌베개 )

 

같은 내용이라도,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라면 어쩐지 좀 더 재미없는 내용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경우 그렇게 해서 놓쳤다가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나중에 다시 찾아내고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던 것 중 하나가 연암의 글이다. 연암의 글은, '고전'이라는 사슬으로 묶어 암기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기에는 지나치게 재미있다. 발랄한 표현도 그렇거니와 그 안의 상상력에 이르면 현대의 작가들이라 하더라도 미치지 못할 경지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그의 매체였던 한문학이 무엇보다도 '전범', 그러니까 옛 글의 형식과 내용을 충실히 익혀 표현하는 것을 지상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을 고려해 보면 감탄의 한숨은 더욱 깊다. '문학사적 가치'는 차치하고라도, 그의 글이 가져다주는 '상업적 / 대중적' 쾌락을 놓치는 독서는 무척이나 안타까운 것이다.  

 

그런 연암의 글 중 더욱 재미있고 의미있는 것들을 선별하여 충실히 번역한 책은 기왕에도 수 종이 나와있다. 와중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는, 연암이 그런 글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어떤 방법과 구성으로 그런 효과를 간취해 냈는지에 대해 보다 구조적으로 살폈을 것이라 기대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 박사 논문을 비롯한 수 편의 논문을 통해 연암에 깊이 침잠해 온 바 있다. 재미는 예측할 수 없으나, 내실에 있어서는 적어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2. 강신주의 다상담 ( 강신주 / 동녘 )

 

'거리의 철학자' 철학박사 강신주의 신작. MBC 라디오에서 6개월간 진행되었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에서 저자가 진행하였던 동명의 코너에서 이름을 따왔다. 저자는 이때의 인연으로 라디오 프로그램이 종영된 뒤에도 대학로의 '벙커'에서 역시 동명의 강좌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팟캐스트에도 올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에 패널들에게 들려주는 강연의 형식으로 출연한 바도 있으니 그의 외모나 강의 스타일이 궁금하신 분은 다시보기로 접해 보셔도 좋겠다.

 

'전공'인 장자에 관한 책이나 제자백가가 활약하던 시기의 책을 쓰기도 하지만, 그에게 대중적인 인기를 가져다 준 것은 역시 '다상담'이라는 브랜드 네임으로 대표되는, '거의 모든 것에 관한 상담'이다. 그의 상담을 듣다 보면, 그래, 철학이란 것이 이렇게 쓰이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철학이라는 것은, 철학과의 대학원생이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나 혹은 철학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장삼이사들이 살면서 겪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대해 좀 더 효율적으로 답하기 위해 고안된 도구가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읽기조차 어려운 철학자의 이름이나 보자마자 겁나는 '-주의', '-주의'같은 이념을 들어, 그 새끼와 헤어져야 할지 말지, 그 상사를 무시하는 게 나을지 불러다 한 번 패는 것이 좋을지를 설명해 주는 강신주야말로, 본질적인 의미에서 가장 철학자답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일면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지는 이 책, 기대된다. 방송이나 강좌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과외의 재미일 것이다.

 

 

 

 

 

 

3. 정치의 즐거움 ( 박원순/오연호 , 오마이북스 )

 

순수하게 봐줄 수도 있는 것이다. 수도 서울의 시장을 찾아가 지난 1년 반 간의 행정경험을 물은 결과물은 작게는 서울 시민부터 크게는 한국의 시민에게까지 유용한 정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이 이미 연임에의 의지를 천명하였다는 점과 그간의 오연호의 행적을 보자면, 삐딱하게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연호의 킹 메이킹 프로젝트, 다음 타자는 박원순이었던 것인가, 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책의 제목도 한편으로는 몹시 해맑은 소녀의 눈망울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게 불타는 야심가의 안광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 되었든, 안철수 씨가 삼백 분의 일로서 현실 정치에 발을 담그게 된 뒤로부터 '탈정치성'에 있어서는 차세대 리더군 가운데에서 부동의 1위에 머물고 있는 박원순 시장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은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지지자에게든, 반대자에게든. 

 

 

 

 

 

 

4.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 유홍준 / 창비 )

 

이것은 마치 인문학계의 설국열차. 한 번 타면 내릴 수 없다. '국내편' 1권이 93년에 출간되었으니 철마는 20년째 달리는 중이다. 책의 판형이나 표지의 디자인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에이, 모으는 맛이 없어졌어, 하고 신 포도를 등지는 여우처럼 합리화라도 해 보련마는, '유쌤'의 책들, 특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모으면 모을수록 빛나는 시리즈물의 마성을 숨기지 않는다. 가지런히 꽂혀있는 것들 중 문득 아무 권이나 빼내어 넘겨보아도 재미 또한 20년 동안 변함이 없으니, 아아, 답사지로 향하는 티켓은 진실로 오로지 편도 뿐이다. 이왕 그렇게 되었다면 부디 오래오래 달려 주소서.  

 

 

 

 

 

5. 인문학 명강 동양고전 ( 신정근 외 / 21세기북스 )

 

위에서는 제목 소개를 한 줄로 끝내기 위해 저자의 이름을 신정근 교수 한 명만 소개하였는데, 이제는 본문으로 들어왔으니 마음 편하게 모든 저자의 이름을 호명해 보도록 한다.

 

강신주, 고미숙, 김언종, 김영수, 박석무, 박웅현, 성백효, 신정근, 심경호, 이광호, 이기동, 정병설, 정재서, 주경철, 한형조

 

이 정도면, '드림콘서트' 급을 넘어서, 퀸시 존스의 '힐더월드' 프로젝트 급에 필적한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 여기, 에서 동양고전을 가장 잘 알고 있거나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대가들로 꽉 채워졌다. 기왕에 동양 고전에 관심을 갖고 있어 해당 저자들의 저서를 따로이 갖고 있는 분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처음으로 동양 고전을 접하는 청소년에게나 아니면 그간 피상적으로 알아왔던 것을 한차례 일람하고자 하는 성인에게 있어 이보다 더 권위 있고 검증된 라인업은 없을 것이다. 본래 시민 강좌였던 것을 엮어 책으로 낸 것이라 하니 읽기에도 수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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