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여름날의 소상(16)




용광로같이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은 아니었어도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이슬과 같은 순수한 사랑이었다.

 

민기는 자신에게 배신의 아픔을 각인시켜주고 떠난 그녀를 만났을 때만 해고 그는 그녀와 같이 영원한 사랑의 늪 속에서 행복의 즙을 푸지게 흡입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었다.

 

한 잎 두 잎 떨어진 은행잎이 소복이 쌓여 금빛 융단을 펼쳐놓은 숲속에서였다.

 

작은 텐트의 좁은 공간은 불편하기보다 두 사람 사이를 더욱 가깝게 해주었고, 밤하늘의 은밀한 달빛이 쏟아져 내리는 텐트 안에서 민기는 그때까지 가슴으로만 사랑했던 그녀를 처음으로 안았다.

 

그녀에게는 처음이 아니었을 수 있었겠지만 민기에게는 처음이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 두 사람은 풀리지 않을 고리로 연결된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언젠가는 마음만 먹으면 풀 수 있는 고리로 연결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을 수 있었겠지만 민기에게는 풀어지지 않는 고리로 연결된 것이었다.

 

민기는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는 가슴에 고여 놓았던 사랑을 그녀의 몸 안으로 분출시키며 수도 없이 사랑을 되뇌었다.

 

그녀는 한 순간의 유희를 즐겼을 수 있었겠지만 민기에게는 영원한 사랑을 확인하는 의식이었다.

 

적어도 민기에게는 성스러웠던 의식이 끝난 후 그와 그녀는 숲 속의 왕자와 공주마냥 나란히 누워 무수히 떠 있는 별들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영원히 지켜달라고 맹세했다.

 

그러나 그 맹세의 종극은 배신과 아픔뿐이었다.

 

 

2개월 전 새벽부터 내리는 봄비가 그칠 줄 모르고 하루 동일 내리고 있는 날이었다.

 

그날 민기는 그녀와 헤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헤어진 것이 아니라 그녀로부터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은 날이었다.

 

그녀의 이별 통보는 그때쯤 그녀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민기에게는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벼락이었다.

 

민기에게 있어서 그녀와의 이별은 예기치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되는 절대 금지의 영역이었으나 그녀는 그 금지의 영역을 단숨에 넘어섰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한 차례의 격정의 시간이 지나고 메이크업 테이블에 앉아 파운데이션을 바르던 그녀가 지나가듯 내뱉았다.

 

그녀는 등을 보이고 있었지만 시선은 거울 속의 민기를 살피고 있었기에 그 시선은 거울을 바라보는 민기의 시선과 마주쳤다.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요.

말 그대로 그만 만나자는 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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