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의 진리는 거짓이겠지만, 인간이 소외된 진리는 인간으로서 도저히 납득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위선도 위악도 모두 거짓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인간의 참모습을 가감 없이 보는 일입니다. 인간을 지나치게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비하하지도 않는 안목은 희귀합니다. 그런 안목의 소유자가 바로 소포클레스입니다. 그의 시각에 따르면, 인간은 ‘섬뜩한 것 to deinon‘입니다. 한 길밖에 안 되는 사람 마음이 헤아릴 수 없는 심연이기에, 인간은 섬뜩한 존재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위선과 위악을 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섬뜩합니다. 다윈주의와 합성생물학,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통해 스스로를 노골적으로 객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인간은 섬뜩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의 크기와 밀도를 무한대로 확장시킬 수 있기에 인간은 섬뜩합니다.
동물이나 기계와 비교하기에 앞서서, 우리 스스로에 대한 섬뜩한 자기인식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은 심연의 ‘한길사람 속‘, 그 섬뜩한 백지 위에 그려져야 할 것입니다. -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