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매우 번잡하면서도 고요하게 지나갔다. 얕은 그릇에 담긴 채 양달에 놓인물처럼 시간이 증발해버렸다. 세제와 파 뿌리 냄새와 물얼룩이 밴 우물가에서, 누가 오지 않는다. 궤짝에 담긴 조기 한뭇에 소금을 뿌리거나 하며 이순일은 생각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까 누가 안 와.
순자야.
하루는 고모가 부엌으로 들어서며 내일부터 이웃집에서 물을 길으러 올 거라고 이순일에게 일렀다. 한달에 오십원씩을 내고 우물을 빌려 쓰는 거라고 했다. - P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