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의 힌트
하승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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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솔러지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까닭은, 읽는 취향이 너무나 확고한 탓이다. 내게는 '그간 입맛에 맞았던 작가의 신간 찾아보기'라는 안전한 선택지가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즉흥적인 독서를 하고 싶다. 이를테면 매번 가는 길에서 샛길로 빠지고 싶은 충동이다. 이번 앤솔러지에는 세간의 평이 양극으로 갈려 읽기를 꺼려 했거나, 이름조차 처음 접해보는 작가가 더러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서른 번의 힌트』를 읽고자 한 계기가 되었다.


 김희재의 「잠도 가는 길」은 밀도 높은 서사를 보여준다. 전작인 『탱크』를 읽지 않아도 작중 배경과 인물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음에, 작가가 세계관을 탄탄하게 쌓아 올린 것이 드러난다. 본편에서 힘을 소모하고 후속에서 시들해지는 경우가 허다한 반면  「잠도 가는 길」은 도리어 본편에 생명력을 실어준다. 바다의 짜고 습하고 일렁이는, 한편으로는 잔잔하고 평온한 상반된 두 속성이 '탱크'라는 기이한 소재를 만나 시너지를 낸다. 맹목과 상처, 용서와 회복.  「잠도 가는 길」은 그런 물결로 다가온다.


 '그 애라면 정말 그곳에 갔을 거예요.' (본문 55쪽)


 강성봉의 「진홍: 박수 외전」은 창작계에 일고 있는 무속신앙 붐 사이에서 시큰둥한 마음을 돌려놓기에 충분하다. 이야기의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강력한 설득이며 해당 단편은 그 일례다. 과거의 광부가, 그의 소매 끝에 달린 나비가 지금의 박수무당을 살게 하는 한 축이 된다. '나는 나의 외로움으로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있으니 사랑하는 것이다(68쪽)'는 말이 오랜 시간을 건너 박수에게로 간다. 그리하여 박수는 혼자가 아닌 둘이 된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아 자리를 지킨다. 


 '우여 슬프시다. 나는 너를 죽였는데 너는 나를 살렸구나.' (73쪽)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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