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기원이고 사람이 대안이다.
이제 막 목사 안수를 받고 사역을 시작한 저와 같은 풋내기 목사에겐 큰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교회입니다. 좀 더 확장된 의미로 공동체라 부를 수 있죠.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목회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진면교사"가 참 많았습니다. 그때는 본이 되는 교계의 어른들, 본이 되는 목사상이 많았지요.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요즘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소수 목사들의 비상식적인 행동과 도를 넘어서는 부패한 교회의 모습이 저와 같은 후배 목사들에게 진면이 아닌 "반면교사"가 됩니다. 희망보다는 실망을 안겨주는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기존의 목회관 혹 교회론에 대한 각성과 함께 교회 본질에 대한 재해석의 붐이 일고 있습니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교회론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이전엔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교회 용어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가정교회, 선교교회, 이머징 처치, 유기적 교회." 저마다 성경적 배경을 가지고 각자의 교회론을 설명합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더 헷갈립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난세처럼 목회 초년생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혼란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교회론의 난세라 부를 수 있는 현시대에 어쩌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무림의 은둔 고수가 나타났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비문이 탄생한 것이지요. 책의 제목도 평범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 일반인은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벌써 제목에서부터 느껴집니다. 저자도 한국인입니다. 가르침은 물론 연구에서도 절대 게으르지 않는 신학자 차정식 교수입니다.
이 책은 한 번에 통으로 읽기 보다는 한 챕터씩 곱씹으며 두고두고 읽어야 할 책입니다. 400페이지의 단권의 책이지만 책이 다루는 내용의 스펙트럼은 실로 방대합니다. 한국 신학자가 이 땅의 교회를 바라보며 예언자적 마음을 가지고 기록한 책이기에 실제적이고 구체적입니다. 우리네 현실과 괴리감이 아닌 너무나 밀착되어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점을 수렴한 만한 꼭짓점을 공동체성의 상실에 두었듯이, 그것을 성찰하고 해소할 만한 활로 역시 공동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가에서 찾는 것아 자연스럽다."(17) 실망을 안겨준 공동체이지만, 그래도 공동체가 희망이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향한 애증의 마음이 그의 연구에 오롯이 드러납니다. 공동체에 대한 기원을 다루며, 저자는 먼저 공동체의 개념과 기능에 대해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역사적 접근, 인문학적 접근, 종교학적 접근을 시도합니다. 목회자들이 범하기 쉬운 편협한 사고를 막기 위함인 듯합니다. 그 후, 본질적으로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바탕으로 구약과 신학을 훑어가기 시작합니다. 에덴에 새겨진 공동체의 원형부터 바울 서신에 기록된 공동체의 모습까지. 예리하며 날카로운 신학자의 눈으로 파헤치는 공동체의 특징과 교훈들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 공동체에 대한 고찰과 반성은 경이롭습니다. 천주교를 기독교의 시원으로 설정하고, 토마스 목사를 통한 개신교의 태동과 함께 출발한 한국 기독교 공동체. 일제 치하와 3.1운동을 거쳐 기독 공동체의 뼈대를 이룬 성서조선의 믿음의 선배들. 예수원과 다일 공동체. 문제가 되고 있는 대형교회로의 발전과정들. 작은 지면에 기록한 역사의 흔적들에 관한 문장 하나하나 모두 버릴 것이 없습니다. 역사를 꿰뚫어내는 그의 통찰력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가 말하는 공동체의 정신은 사실 서두에 이미 밝혀두었습니다. "초대교회는 그 집중된 자본의 권련 속에 특별히 화려한 건물이나 조직의 명부가 남지 않았다. 거기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며 움직이던 구체적인 사람들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만나며 소통해나갔을 뿐이다."(32) 사람이 교회이며 사람이 희망이란 것이지요. 책의 마지막장을 덮지만, 솔직히 뚜렷한 해답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불안하거나 혼란스러운 건 아닙니다. 그냥, 묵직한 숙제를 다시 안은 느낌입니다. 제가 교회이고 제가 희망이니까요. 결국, 교회의 기원도 사람, 실천적 대안도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