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지음 / 이성과힘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를 할 때 대하게 되는 책 중, 읽기 힘든 종류가 두 가지 있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 즉,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마치 누구나 가능한 것처럼 권하는 자기계발서가 그 첫째구요. 다른 하나는 현실을 정말 노골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 나머지, 그것을 마지막 장까지 힘겹게 소화해 내야 하는 경우인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소설집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후자에 속하지만 희망을 전하고자 하는 전자의 부류들 못지 않은 메세지를 지니고 있는 작품입니다. 요즘 말로 갑질이라 하는 고용주의 횡포와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는 도시 근로자들의 나약한 입장을 이 책만큼 상징적으로 잘 대변해 준 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때는 1970년대 낙원구 행복동. 그러나 그 곳에 사는 난장이와 그 식구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도 '낙원'이 떠올려지는 생활도 아니었습니다. 한국의 경제개발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던 35년 전, 모두 다 앞만 보고 발전과 성장만을 외치며 죽자고 달리던 시기에 밑바닥에 버려지다시피 한 노동자들의 모습은 '난장이'라는 특정 인물로 대표되어 소설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는 일반보다 눈에 띄게 작은 기형적 체구로 또한 자연스레 사회, 경제적 취약 계층으로 편입되 버렸고 그 자녀들도 놀림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체제의 부산물인 쇳덩어리를 짊어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난장이의 생계 방식은 고스란히 세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어 세대를 이은 부와 가난의 갈등을 예고하는 듯 했습니다.


"(...)그들은 복잡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 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위에서는 날마다 무지한 생산 계획을 세웁니다. 노동자들은 기계를 돌려 일합니다.(...)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 p.166


이야기는 몇 가지 특징을 띠고 진행되는데요. 화자의 잦은 교체, 영상으로 말하자면 회상씬이나 과거의 울림도 적지 않구요. 거기다 간단명료한 문체, 다분히 의도적인 상징성은 독자에 따라 난해하다는 평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온 가족의 월급을 다 합쳐도 최저생계비의 근사치에도 가닿지 못하는 절망적인 현실은 회사 측의 막무가내식 노동 착취와 악조건 속 근무 환경이 더해져 그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욱 험난할 것을 각인시켜 줍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립, 그리고 그들 중간에서 화해를 돕고 공감하는 조력자로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며 작금의 어느 기업과 온 몸으로 불의에 대항했던 몇몇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에서 많은 보수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우선으로 바란다는 대목은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질답일 것입니다. 성실하고 검약한 생활이 곧 잘 사는 지름길이라 그나마 믿었던 사람들은 하나 둘 희망의 끈을 놓아갔습니다. 또 일한 만큼의 정당한 급여와 매일 계속되는 노동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의 피로도와 복지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은, 아직도 경영주의 입장에선 과한 요구라 느껴지는 모양인 듯 하구요. 은강 노동자들이 그렇게 달게 받는 불이익과 고통을 교육과 변혁으로 깨닫게 하기 위해 가슴으로 고민하는 청년 지섭, 그리고 자신도 또 다른 모습의 희생자인 '난장이'라는 것을 실감한 '신애'는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느꼈을 법한 감정과 욕구를 대변해 주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은 낙원을 이루어간다는 착각을 가졌다. 설혹 낙원을 건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것이지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나는 했다.(...)그들은 우리를 낙원 밖, 썩어가는 쓰레기 더미 옆에 내동댕이쳐둘 것이다. 그들은 냉.온방기를 단 승용차에 가족을 태우고 나가다 교외로 이어진 도로 옆에서 우리를 발견할 것이다. "더럽기도 해라!" 그들의 부인이 말할 것이다. "게으른 낙오자들!" 그들이 말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일한 만큼 주지 않은 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 p.221


은강계열 회장의 손자인 경훈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는 비열하고 냉소적인 자본가의 눈으로 바라본 발 밑의 세상이, 어떤 협상과 의지로도 교화나 화해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허무한 끝을 예감케 합니다. 작가는 부유한 자본가들이 하층민들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고 안락함만을 누리는 그들의 유유자적한 삶 자체가 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있다는 인식 조차 하지 못하는 그들은 응당, 반성도 할 수 없고 못 가진 자들과의 화해도 성사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오랜 세월 동안 200쇄를 넘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독자들에게 읽혀져 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이런 글귀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시인이란 직업이 쓸 것이 많고 작품성이 뛰어난 결과물을 다수 배출할 수 있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라구요. 아마도 이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이 소설집이 앞으로도 계속 사랑받아야 할 운명이라면, 부디 이 사회의 부의 피라미드 윗부분에 자리한 지식인과 정재계의 집집마다 한 권씩 빠짐없이 꽂혀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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