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김영하 작가의 글을 접한 건 이번이 다섯번째다. <살인자의 기억법>,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보다>에 이어 이번 산문집 <말하다>에 이른 것인데 처음 앞의 두 작품을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 작가 대체 뭐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해 서평도 못 썼다. 살인이니 파괴니 하는 코드가 소재주의자로 느껴질 만큼 강한 이미지로 다가왔기에 '김영하'라는 사람 자체에 궁금증이 막 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음울한 소설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소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이 사회에 대해선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해서 펼쳐본게 두 산문집이었던 것이다.


팟캐스트에서도 얼핏 들었던 얘기지만 그는 작가가 될 만한 그 어떤 요소도 없던 인물이었다. 그저 무난한 중산층의 인생. 군인 아버지에, 굳이 작가가 되지 않았어도 밥벌이는 충분히 할 수 있었던 배경을 갖췄지만 계시처럼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라며 뛰쳐나온 것이다. 요즘 세상같으면 전혀 상상도 못할 무모한 짓이지만 가능성이 넘쳤던 경제성장의 시기였기에 그 무모함이 먹혔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정석대로를 밟지 않고 작가가 되었기에 체감하는 좋은 면도 분명히 있다고 한다.


분명 그렇다. 작가를 준비하며 거치는 전공교육을 통해서는 글을 기술과 일, 방법으로 대할 뿐이지만 글 쓰는 작업이 주는 본연의 기능, 말하자면 글을 쓰면서 자신이 느끼는 변화나 힐링의 효과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기 쉽다. 소설이라는 것은 엄연히 출판시장에 속해있고 판매량과 독자들의 반응, 비평등에 영향을 받기 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글쓰기 본연의 즐거움을 간직한 채 직업적인 피로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은 좀체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작가 김영하의 작품 세계는 가히 지치지 않는 즐거움의 세계같아 보인다.


작가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자기 상상력 안에 갇혀 있을 때 작가들은 더 멀리 나아가서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감히 꿈꾸지 않는 것, 감히 경험하지 않는 것, 또는 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경험하고 그 경험을 사회로 가져오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서 그것을 이야기해주는 것입니다. - p.112


한번은 재미로 유서를 한번 써 볼까 했던 적이 있는데 관두었다. 혹여라도 내 글이 누구 눈에라도 보이게 되면 심상찮은 일로 오해받기 딱 좋으니까. 소설가의 장점은 이 모든 발칙한 상상을 자신의 글에서만큼은 얼마든지 표출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기해방감을 느낀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 '자기해방'이라는 표현이 아주 맘에 들었는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점점 줄고 있지만 글을 쓰는 행위의 자유로움은 이미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일기나 웹등에선 물론 자기만의 책을 출판하는 것이 꿈인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또 '늙지 않는 발레리나'라든지 극장의 문지기등으로 작가를 비유한 표현은 김영하라는 사람이 생각하는 '작가관'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쓴 글과 독자들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든 대목이었다. 소통이란 작가와 작품, 그리고 독자와 작품 사이에서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그의 논리는 지금보다 작가가 신비주의에 갇혀있었던,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았던 예전을 떠올리게도 만들었다.


소통과 공유라는 단어가 만연해지고 개인만의 내밀한 세계 구축이 갈급한 상황에서 책은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규칙적인 일상 이외에 우리가 온전히 혼자서만이 할 수 있는 생산적인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 문학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백이면 백 모든 이들의 감성을 포용하는 즐거운 고독의 장이라는 김영하의 작가적 세계관이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반갑게 찾아볼 수 있게 되는 동기가 될 것 같다.


저는 글을 잘 쓰는 것은 어떤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기법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떤 순간에 인간이 자기 서재, 아무도 침입해 오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정직하게 쓴 글에는 늘 힘이 있고 매력이 있어요.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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