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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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인의 정보가 이리 저리 헤프게 나뒹구는 요즘엔 일주일에 한 두번쯤 보험회사에서 자신의 핸드폰으로 가입권유 전화가 오는 건 특별한 일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계약성사에 목이 마른 이들을 역이용하는 자해공갈단들처럼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을 소재로 만들어진 공포물은 더욱 더 호기심과 섬뜩함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이미 황정민과 유선 주연의 영화로 개봉되어 2007년 여름을 한바탕 휘젓고 간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 표지부터가 심상찮다.

주인공 와카쓰키 신지는 생명보험회사의 말단직원이다. 어느 날 낯선 여인의 자살 관련 보험금 문의 전화를 받고 그로부터 얼마 후 검은 집에서 목을 매단 시신의 첫번째 목격자가 된다. 죽은 아이의 아버지는 그가 보기에 아무래도 슬퍼하는 기색이 전혀 없는 듯 하고 고약한 악취와 짙은 향수 냄새를 달고 다니는 그의 아내 역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추리 소설이 늘 그렇듯이 신지는 특유의 오지랖을 발휘하여 자살로 마무리되려는 사건을 독단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보험회사의 업무량이 적진 않을 텐데 다른 고객 유치나 보전 업무는 윗 상사나 동료에게 미뤄두고 검은 집에 집착하는 캐릭터 설정. 어찌 보면 뻔하고 억지스럽긴 하지만 이 또한 주인공과 악당의 맞대결을 위해 꼭 필요한 컨셉으로 이해하고 애써 넘어간 부분이다.

추리소설을 많이 본 독자라면 범인이 누구인가는 대략 중간 이전부터 짐작을 했을 것이다. 범인이 다녔던 학교를 찾아가거나 과거이력을 살펴보는 장면, 심리학을 전공한 여친 메구미와의 열띤 토론, 신지 자신의 유년시절 형에 대한 트마우마 등은 범인을 분석하고 처단하기 위해 모두 짜여진 장치같아 아쉽기도 했다. 내가 집중적으로 읽은 부분은 선천적 사이코패스 존재 유무에 관한 대학조교와의 흥미로운 대화였는데 사실 그건 내가 평소에도 관심있게 생각하는 분야이기도 해서 추리소설답지 않게 전문지식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읽혔다.

"배덕증후군이군."
노리코가 나즈막하게 중얼거렸다. 귀에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기때문에 신지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인격장애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정성결여와 함께 억제결여, 폭발성의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특별히 배덕증후군이라고 하지요. 연속적으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 p.195

그는 마침내 집 전체를 뒤덮고 있는 기이한 악취의 정체를 깨달았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것은 처참한 살육의 현장이었다. (...) 오래된 핏자국을 새로운 피가 뒤덮으면서 만들어낸 악취가, 마침내 집 전체에 스며든 것이 틀림없다. - p.393

소설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과거 역사 속에 존재했던 광기 어린 사이코패스들의 범죄행위는 사실여부가 궁금할 정도로 끔찍하고 사실적이다. 현재 범죄를 연구하는 프로파일러나 법의학 쪽에서는 이미 사이코패스를 하나의 인격장애로 분류하여 그 위험성을 경고해 온지 오래다. 치정이나 돈 문제같은 인간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일들로 일어나는 범죄도 무섭지만 가끔 tv를 보면 범행 동기 자체가 묘연한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고 상처 입히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이코패스적 인간들이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참혹한 일들을 저지르는 것을 보면 역시 귀신도 뭣도 못 이기는 게 '인간' 혹은 인간의 사악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경찰이 피해자의 신고에 즉각대응하지 못하거나 꼼꼼하지 못한 수사가 범죄를 키우거나 막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 겉보기로 사람을 판단하는 우리의 고정관념,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보험관련직에 종사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해당 서평은 반디펜벗 6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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