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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소비다 - 상품 미학적 교육에 대한 비평
볼프강 울리히 지음, 김정근.조이한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몇 해전부터 일주일에 한 두번씩 이메일로 오는 소비자실태조사 관련 설문에 참여하고 있는데 보통, 제품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나 사용경험을 묻고 광고영상을 보여준 뒤 어느 점이 좋고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를 수치나 서술식으로 평가하는 항목들이 주를 이룬다. 최근 기획되는 상품들은 이렇게 기능과 목적성에만 주안점을 둔 실제가치보다 특정 기업의 이미지나 이상적 생활모습을 구현한 광고모델의 연출효과를 기대한 마케팅이 대세다.
상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히 기존의 것이 낡아져서 새것으로 대체한다는 의미를 넘어 때로는 자신의 품격을 높이거나 과거의 추억에 젖고 지루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되는 등 다채로운 성격을 띠게 되었다. 가령, 가방은 물건을 넣고 휴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지만 유명 모델이 선전한 멋진 디자인에다 값비싼 가격이 매겨져 백화점 매장에 전시되면 그땐 이미 가방의 실용성은 배제되고 소유가 목적이 되는 소비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책 <모든 것은 소비다>에서는 이러한 제품의 브랜드화가 사치품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스포츠, 오피스, 주방 용품, 심지어 초콜릿이나 생수 같은 일상에 필요한 식료품들에까지 스며들어 결국엔 어떤 제품을 선택하느냐의 따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게 되는 소비의 계층화를 진단하고 나선다.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또 자기 만족의 행위로써 물건을 고를 때에 적당히 이름난 제품, 그러나 자신에 대한 무시나 경멸이 쏠리지 않을만한 친환경적 제품 구매를 위해 지금의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물건 구입에 할애한다. 선물 하나를 하려 해도 가격이 너무 싸서 혹은 비싸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을까 전전긍긍해 한다. 이 때 일반 상식 수준을 벗어난 선물을 한 당사자는 돌연 교양없고 개념없는 인간이 되기도 한다. 더 이상 편리하고 쓸모 있는 창조적 제품을 만들 수 없을 때, 소비 자본주의가 꾀하게 되는 돌파구는 '상황의 파시즘'이다.
아무리 안 팔리는 제품들도 장마를 만나 불티나게 팔리는 우산과 같이 '제 때'를 만나면 수요는 늘게 마련이다. 실례로 사계절을 겨냥한 각종 시즌 제품들이 그것인데, 저자는 이런 시즌의 의미를 좀 더 세분화하여 일상에 접목시킨 상황에 중점을 둔 기업 마케팅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첫날밤을 맞이하는 신혼 부부에게 어울리는 와인, 잠 들기 전 샤워시 긴장을 풀어주는 샤워젤, 중요한 시험시 손목에 걸어야 하는 장신구. 이렇게 맞춤 제품이 아니면 결과물이 형편없을 것 같다는 일종의 세뇌를 받은 소비자는 그것이 분명 긍적적 결과를 가져다 줄거라는 '플라세보효과'와 같은 심리적 압박에 미신처럼 그 제품을 구입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모두가 광고 속 오븐과 크림과 바지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맛의 빵과 탄력있는 몸매와 간지나는 핏을 보장할 수는 없다.
최근엔 제품이 지니는 도덕적 이미지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판매자와 소비자가 생겨났다. 제품이 어디에서 생산되고 어떤 공정을 거쳤으며 내용물의 친환경성은 물론 작업환경의 합리성까지, 구매자가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참관하고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게다가 수익금액의 일부가 좋은 데 쓰여진다고 하면 양심적으로 괜한 뿌듯함까지 얻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교양있는 소비조차도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중산층의 권리로 한정지어지는 시스템으로 '양심적 소비'라는 행위 자체도 어려운 서민들에겐 언감생심의 일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소비문화를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은 그 사람의 성별이나 나이, 재산규모와 같은 좁은 틀에서 정치적 성향, 윤리관등 통상적 사고방식 전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매개고리로서 적잖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저자가 예술형식과 소비문화를 비교해 설명한 것처럼, 상품이 한 폭의 그림이나 흐르는 음악과 같이 인간의 내면을 치유하고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좀 더 기품있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제품 그 이상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과장으로 범벅이 된 상품광고에 부정적 시선이 팽배했지만 이제는 내용물보다 상품포장에 관심을 더 기울이고 음식의 화룡점정이 되는 데코레이션처럼 제품의 외양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선택기준이 되었다. 오히려 그 허구적 가치를 더 신봉하는 매니아층의 소비자가 많아진 요즘엔 이것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추세다. 하루에도 인터넷 여기저기서 각종 상품의 넘쳐나는 리뷰들과 특정제품을 사용하는 동호회가 그걸 말해준다. 쓰레기 만두, 멜라민파동으로 한창 들끓었던 소비자들은 이제 모 회사의 갑질채용에 탈퇴시위를 벌이고 혹은 도덕성 자질논란이 도마위에 오른 기업에 대해 하나 둘 등을 돌리고 있다.
이로써 제품을 사용함으로써 누리게 되는 모든 효과는 물질적 차원에서 한층 더 높은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내가 쓰고 있는 제품이 나를 말해 주는 시대. 제품 선택에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이유다.
[해당 서평은 반디펜벗 6월의 테마서평으로 작성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