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EBS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제작팀 지음 / 해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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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나오지 않은 내가 가장 두려웠던 건 내 또래의 친구들이 대학생활과 동아리등의 이야기로 대화의 꽃을 피우던 20대초반의 사회초년시절이었는데 역시 같은 직장인 동료 사이에서도 대졸과 초대졸, 고졸에 따라 존재한 연봉와 직급차이 앞에서 학력, 학벌에 따른 현실적 차별에 뼈아픈 좌절을 느꼈던 나날의 연속으로 기억된다. 많이 바뀌었다지만 요즘도 갖가지 스펙과 수상, 봉사활동등의 이력이 한 사람의 가치판단 기준이 되곤 한다.


지금처럼 취업난국이 극심하진 않았던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대학은 놀러 가는 곳, 미팅하고 술마시며 희희낙낙하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대중매체의 영향도 한몫 했지만 일단 대학은 들어가고 보자, 졸업장만 따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이 이제 막 입시지옥을 벗어난 캠퍼스의 젊은이들을 나태하게 만든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세상은 변했다. 학벌과 높은 스펙 또한 중요하지만 창의력과 개성, 리더십을 강조하는 새시대 모든 기업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진부한 이력서들 속 한 칸을 채우는 발자취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이 책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에 등장하는 인재 프로젝트의 참여자들은 남부러울 것 없는 명문대에 갖가지 스펙이 화려한 반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에 대한 내면 성찰이 부족하고 구체적인 목표, 자신감, 실패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의외로 보통 사람들 못지 않게 가지고 있었다. 학창시절 한가닥 했다는 우등생까지도 취업시 면접이나 자기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면 움츠러드는 현상, 이것은 수치심과 두려움에 뿌리를 둔 동양인 고유의 특성이자 우리의 잘못된 교육 시스템 때문이다.


우리의 초. 중. 고등학교 12년 동안 정답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교과서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이나 주관에 따라 다양하게 답할 수 있는 문제도 우리 교육에서는 그 답을 열어놓기보다는 한 가지로 정해두고 정답은 하나라고 가르친다. - p.217 


이렇게 정답프레임에 갇힌 교육시스템은 자유로운 생각을 펼치고 생각을 끄집어내야 하는 탐구나 실험, 논의 상황에선 제 소리를 내기 어려운 천편일률적 인력만을 생산할 뿐이다. 인터넷에서 '세계 100위 대학'이란 이름으로 나열된 순위에서 상위권을 다수 점거한 대학들이 미국소재의 학교인데, 이 책에서는 세인트 존스와 예시바대학이 좋은 예로 등장한다. 일반적인 대학의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고 전 학년 동안 필독서 목록을 주고 그에 대해 학생들끼리 토의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거나, 침묵하는 공부를 떠나 파트너와 쉴새 없이 지식을 주고 받으며 질문과 답을 거듭 짜내는 두 대학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제일 놀라웠던 건 10가지 과목이 넘는 교과과정에 그것도 아주 빠른 진도를 아이들은 군말없이 따라가는 듯 보였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교사의 일방적 주입식 수업에 5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런 질문도 토론도 없는 지루한 수업방식이, 안 그래도 내게 취약했던 수학과 같은 과목은 아예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버린 시스템이었던 것 같다. 거기다 "떠들지 마!", "조용히 해", " 자습해~" 같은 선생님의 꾸짖는 소리 내지는 방관적인 교육방법은 우등생도 아닌 내가 감히 질문이나 할 용기조차 주지 않았다.


현재 대학생이거나 졸업을 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부모님, 교사, 친지, 지인등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혹은 장래에 필요할 것 같으니까 등으로 진정한 배움의 욕구나 학구열로 불타올라 진학한 케이스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은 젊음과 패기로 가득해야 할 지식의 성소인데 언젠가부터 이 곳은 취업의 수단이 되어버렸고, 고3수험생들에겐 인생의 종착지마냥 명문대의 허울을 그저 쫓고 있는 현실이 안쓰럽기만 하다.


공부하기에도 벅찬 시간에 책 한권 읽을 짬이 있냐고, 시험 예상 문제나 콕 콕 찝어달라던 친구들이 기억난다. 너는 왜 대학 안 가냐고 묻던 아이들도. 대학을 안 가는 이유는, 마치 결혼을 왜 안하냐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왜 결혼을 하냐고 묻는 이들은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이제 이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왔다.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우리나라가 서구대학의 선진교육문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땐 꼭 대학에 가서 내가 배우고 싶은 분야의 공부를 맘껏 해보고 싶다. 나는 다만 아직까지 대학의 필요성을 굳이 못 느끼고 있는 1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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