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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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접하면서 다른 분들의 서평을 수십 수백 편 읽다 보면 어쩔 땐 너무나도 익숙한 표지에 마치 내가 그 책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때가 있다. 신경숙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말하자면 그런 류의 작품인데, 열흘 전 쯤 밤새 후딱 읽어놓고 리뷰를 쓰려 온갖 궁리를 했는데 잘되지 않아 지금에야 쓴다. 첫 문장을 뭘로 시작해야 할지도 몰라 며칠을 앓았던 책. 미디어효과를 톡톡히 본 베스트셀러이기도 하고 여태껏 표지를 보고 모든 책의 내용을 가늠해 온 나에겐 무난한 표지 속에 감춰진 충격적이고도 비극적인 스토리가 짠한 아픔으로 다가왔던 책이다.


장르소설도 아닌 순수문학에서 이처럼 많은 이들의 죽음을 연달아 목도하는 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죽음은 폭력과 억눌림에 마지막까지 순응하지 않겠다는 메시지 혹은 결의로도 보인다.

엄마의 죽음으로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려는 정윤, 연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시대의 잘못됨에 분신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윤미래, 그런 언니의 죽음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플레어 치마와 화상자국으로 자신의 상처를 매번 확인하다 결국 세상을 등지는 미루, 어릴 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거미를 극복했으나 그 몇 갑절 공포로 자신을 덮치던 무언의 억압 앞에 죽음으로써 무릎 꿇고 만 단이. 청각장애 고양이 에밀리까지도 결핍의 대상이긴 매한가지다.


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기쁨이지만은 않을까. 왜 슬픔이고 절망이기도 할까. - p.157


오늘을 잊지 말자, 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울적해져 있었다. 상실될 걸 알고 있는 이의 고독이 묻어 있었다. - p.158


하루 아침에 누군가가 죽거나 소식이 끊겨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 매순간 좌절과 상실의 불안 속에 놓인 고통의 존재로써 사랑따윈 사치였을까. 그들은 한가지 감정으로 뭐라 설명되어질 수 없는 복잡미묘한 관계와 연민으로 서로를 보듬은 채 기대어 살아간다.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기둥이었던 윤교수가 남긴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프'의 일화처럼. 부조리한 사회에 굴복하거나 슬퍼하지 말며 맞서 투쟁하라는 그의 이야기는 힘있는 위로로 때로는 멀고도 험난한 여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누군가 약속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의미없는 일은 없다고 말이야. 믿을 만한 약속된 무엇이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쫓기고 고독하고 불안하고 이렇게 두려움 속에서 보내고 나면 다른 것들이 온다고 말이야. 이러느니 차라리 인생의 끝에 청춘이 시작된다면 꿈에 충실할 수 있지 않을까? - p.107


오늘날 남녀간의 만남 속에서 사랑의 감정만을 상상하는 (나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작가가 전달하려는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자의 기록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이유는 다르지만 부조리에 희생당하는 자들이 있고 그것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투사가 되길 자처하는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 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 p.291


철저히 외양만을 중점으로 마케팅되어진 이 소설을 가벼이 집어든 건 내 실수였을까. 아니면 매번 끌리듯이 치열한 청춘의 삶을 그린 작품을 꿰뚫어 보는 내 직관때문이었을까. 하루키 문학과도 비슷한 맥을 같이 하는 이 깊은 울림이 있는 이야기가, 일본소설이 주름잡는 최근 국내문학 시장의 안타까움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작가의 말처럼 우리만의 특색있는 청춘소설로 대표되어 더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고 기꺼이 아파하는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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