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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중학교 때 유난히 잠이 많아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다가 선생님들께 딱 걸린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그때마다 "자기 싫어도 죽으면 평생 자야 하는 게 잠이니 지금은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라는 다소 철학적(?)이면서도 인생무상(?)의 의미가 짙은 꾸지람을 듣곤 했다. 그 시절, 한국인이 사랑하는 팝 1위를 당당히 차지했던 비틀즈의 Yesterday가 내 알람시계 미디버젼으로 내장돼 있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한동안 그 노래의 첫 소절만 나와도 치를 떨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생생하다.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들을 비롯한 수많은 종말 시리즈 대열에 합류한 이 책은 사뭇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눈만 뜨면 새로운 디지털기기가 등장하고, 단명하는 유행의 사이클 궤도안에서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빠르게 적응하고 뒤쳐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불안과 노력은, 의약과 카페인의 힘을 빌어 '의식의 연장'으로 치닫게 되었다. 일주일 내내 24시간 가동되는 이른바, 24/7시장은 이런 우리의 깨어 있는 시간을 이용해 지속적인 노동과 소비를 촉구한다. 인간 본연의 특권인 꿈 꿀 권리는 잦은 철야, 즉각 피드백을 요구하는 항시대기, 그리고 쏟아지는 미디어에 잠식되어 그 입지가 점차 좁아지고 있다.
군사기획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던 불면 연구는 오늘날 잠들지 않는 노동자, 쉼없는 소비자를 생산해 내어 제약회사 및 대기업의 호주머니를 두둑히 채워주고 있으며 언젠가는 잠도 생수처럼 구입해 누려야만 하는 사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나온 지금, 잠은 더 이상 제어 불가능한 '자연적 장벽'이 아니다. 시간이 돈의 가치를 넘어선 이 시대에 휴식과 재생, 회복이란 의미보다 게으름, 태만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잠은 점점 죄악시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24/7은 무차별의 시간으로, 이 시간과 마주하여 인간 삶의 허약성은 갈수록 부적합하게 된다. 그 시간 속에서 잠은 꼭 필요한 것도, 불가피한 것도 아니다. (...) 24/7은 잠시도 쉬지 않고 무한히 일한다는 관념을 그럴듯한 것, 심지어 정상적인 것으로 만든다. - p.25
불면상태는 누그러지지 않는 각성 상태와 구별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고난에 대한, 그리고 우리를 압도해오는 책임의 무한성에 대한 거의 견뎌낼 수 없는 주의가 동반되는 것이다. - p.39
불면은, 인간의 경쟁의식과 24/7체제의 무한 정보획득 가능성에 힘입어 도피불가한 시각경험의 연속성으로 당연시되고, 도시의 야경 속, 환하게 밝혀진 테트리스 블록같은 건물 안 사무실처럼 부지런과 성실의 대명사가 되었다. 금융서비스, 인터넷 상거래, 야식문화와 같이 언제든 필요하면 즉각구매와 처리가 가능한 시스템은, 반면 우리를 잠들지 않는 산업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상과 일의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제도의 권력이 점차 우리의 사적공간과 의식, 기억을 통제하고 포획해나가는 사회속에서 피로란, 늘 등에 업고 다녀야 마땅한 보이지 않는 짐이다.
이 책의 저자 조너선 크레리는 이렇게 부득불 시대와 반체제적 성격을 띠게 된 잠이 역사적으로 그 지위가 하락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 그로 인해 얻어진 대기업들의 전략적 이윤창출, 약물의 오남용문제, 움직임없는 불활성을 배척하는 '테크노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해 다각도적 비판을 제시하고 나선다. 책에 언급되어진 소설이나 영화, 예술작품 그리고 사상가들의 말은 작금의 현실을 통탄하는 저자의 말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해온(?) 잠 안재우기 고문을,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무언의 강제에 의해서 이젠 스스로 자처해 피로사회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공휴일에도 걱정과 스트레스로 가득찬 머리로 온전한 잠을 청할 수 없다. 잠든 자는 이단이며 도태와 배제의 1순위로 낙인찍히기 충분한 대상이기에 수면 중 받는 전화에도 목소리를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맨정신인척'해야 하는 괴로운 세상이다.
지금은 치워버리고 없지만 tv가 있을때만 해도 만사 모든 일을 제쳐두고 좋아하는 드라마를 본방사수하느라 아까운 시간이 무의미하게 흘러가도록 방관하고 있었다. 능동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나마 아직 나는 스마트폰의 사용을 거부하고 사방에서 보도되는 세상사 뉴스를 알 것만 알아야 권리를 지키고 있다. 잠을 잉여스런 행위로만 치부하는 사회에 대항하여 숙면을 우선시하는 것이 어쩌면 당장은 이기적이게 보일지라도 우리의 꿈을 컨텐츠화시키고 로봇과 가까운 기계인간을 만들려는 무모한 프로젝트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잠의 중요성을 느끼고 지켜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잠은 개체화로부터의 주기적인 놓여남, 즉 우리가 낮이면 거하고 관리하는 얄팍한 주체성들의 느슨하게 얽힌 타래가 매일밤 풀어지는 것이다. - p.196
인간의 본능인 잠을 고의적으로 조절하려는 이러한 세태는, 항시 대기인 전원 on상태에서 의식적으로 풀려나야할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즉,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시도가 많아질수록 그 힘을 잃기 마련이다. 그것은 잠이 현실과의 단절과 쓸모없는 시간소비가 아니라 의식의 연장선에서 삶의 한부분으로써 영원의 죽음과는 다르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고유한 권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