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오랜 세월 감옥형을 살다 뒤늦게 무죄로 판명돼 방면되는 사람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분명 자신을 포함한 몇 명의 사람은 그 혐의없음을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거나 상황을 외면함으로써 억울한 이로 하여금 지난한 무고의 세월을 보내게 한 것은 어느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 미국 남부의 미시시피 주. 그 곳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흑인들이 백인아이를 놀리고 괴롭히는, 흔히 알고 있는 내 상식을 벗어나는 거꾸로 인종차별이 대수롭잖게 행해지고 미국의 빈곤율 1위라는 불명예와 지독한 가난을 짊어진 지역이다. 두 주인공 래리와 사일러스는 어린 시절 사회와 어른들에 의해 심어진 금기를 깨고 그들만의 우정을 숲속에서 몰래 쌓지만 마음속으론 가끔 서로에게 없는 것을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둘의 관계는 래리가 사일러스에게 던진 한마디 말과 그와 데이트 후 실종된 신디 워커의 사건 이후 한없이 멀어지게 된다.



래리는 흑인들이 느끼는 분노는 백인들이 자기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반응이라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먼저 잘못했잖아' 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백인이 흑인과 친구가 되고 싶어하고 선물을 주고 심지어 거처까지 마련해준다면, 흑인들은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 p.139



실종된 신디와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다는 정황증거와, 진술이 헛점투성이란 이유로 사실상 납치, 강간, 살해용의자로 치부되어 25년간 샤봇 마을 사람들과 그 지역 카운티 전체에서 소문난 '괴물'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래리. 손님하나 없는 무늬만 정비소를 운영중인 그에게 친구라곤 매일 아침 모이를 주는 닭들과 가끔씩 자신을 염탐하는 수사관 프렌치, 그리고 책장 속의수많은 책들뿐이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의 엄마이나 로트가 그랬던 것처럼 매일 기도한다. 진정한 친구를 보내주시고 정비소에 손님이 오기를, 그리고 내일도 요양원에 있는 엄마의 정신이 맑아 있기를... 


25년이 지난 지금 그의 친구 사일러스가 경찰이 되어 돌아온 고향 샤봇에서 대지주의 딸 티나 러더포드양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지난날 신디 워커의 실종사건이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자연스레 의심의 눈총은 래리를 향하게 된다. 한편, 누군가에게 총상을 당해 중환자실에 있는 래리는 회복 후 즉시 경찰의 추궁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용의자 신분의 래리와 그의 친구인 순경 사일러스의 재회는 불가피하게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사일러스는 래리를 불편해하고 어색해하는 반면 묘한 죄책감을 느끼고 요양원에 있는 래리의 어머니에게 지극정성을 다한다. 그에게 외투를 적선하듯 던져주던 그 옛날 이나의 모습은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는 힘없는 치매환자의 모습으로 그에게 용서를 구하는 듯 하다. 그리고 경찰과의 심문 중 사일러스의 입을 통해 밝혀진 25년 전 '그 날'의 또다른 신디워커의 행적은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고 그 동안 래리를 사건의 범인으로 낙인찍었던 사회를 향한 분노와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그 책임여부는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두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들과 사건묘사가 치밀하게 구성된 이 소설은 순수문학과 스릴러의 중간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범인이 누구인가를 쫓아가는 시선에만 치중하지 않고 인종차별과 가족, 십대 소년들의 우정, 지역사회의 안일함과 편견, 그리고 범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등 여러 문제를 다각도로 비판하고 분석하는 진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인 톰 프랭클린은 책의 말미에서 역시 정비공의 아들이었던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븐 킹 작가류의 소설과 함께 단편적인 경험과 학창시절의 기억, 에피소드등이 래리 오트라는 백인 주인공의 성격과 주변 환경에 갈수록 동일시되어갔다고 고백하고 있다.


과연 내가 사일러스라면 뒤늦게라도 오랜 자신의 비밀을 털어놨을지, 혹은 래리였다면 티나 실종사건에 대해 얼마만큼의 책임감을 느꼈을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소설의 리뷰를 쓰는 것이 익숙치 않은 나로썬 장르소설의 성격까지 띠고 있는 이 책의 이른 바 지뢰(스포)를 건드리지 않고 최대한 작품의 완성도와 깊이를 한정된 공간안에서 전달하기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은 최대한 속도를 붙여 단숨에 읽어 나가면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밀려드는 여운과 마무리에 한동안 잠 못 이루게 될 것이다. 어쩌면 래리에게 깊은 감정이입이 되어 배갯잇을 흠뻑 적시게 될지도.



앤지는 식탁에 백합 꽃다발을 올려놓았고, 과일이 가득한 바구니와 계피향이 나는 초를 올려놓았다. 래리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냉장고에 먹을 것도 가득 채워놓았다. 맥주 두캔은 치우고, 대신 말라의 핫도그를 쟁여놓았다. 래리는 아직 모르겠지만, 사일러스가 위성TV도 설치했다. 래리는 아직 모르겠지만, 사일러스는 한 팔로 트랙터 운전법을 독학한 후 신선한 풀이 가득한 풀밭으로 닭들을 데려갔고, 닭들은 스무 개가 넘는 계란을 낳아놓았다. - p.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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