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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
노명우 지음 / 사월의책 / 2013년 10월
평점 :
혼자사는 공인들이 등장하는 tv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털털해 보이던 남자연예인이 의외로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한 집안과 가사일에 도가 튼 생활을 지켜보면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동시에 혼자 사는 삶도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출연자 대부분의 냉장고엔 약속이나 한 듯 인스턴트 식품과 날짜 지난 음식들이 가득한게 보통이지만.
1인 가구의 증가는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하다. - p.53
1인 가구에 대한 부정적 편견과 환상이 공존하는 요즘, 예의 프로그램은 그 편견을 깨부수기도 하고 아직은 드문 싱글 라이프의, 일반화된 타자로서 모델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교육 과정에서 '사회화'라고 하는 군집생활에 필요한 개념과 제도를 당연시하고 습득하게 한다. 싱글족이 반사회적인 암적존재로 여겨지는 부분엔 아마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는 1인가구의 비율에도 불구하고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통적 관습과 인식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유명한 철학자들이 고독을 즐기며 단독인으로서 예술적 낭만을 고취시켰던 것과 달리 지금은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인격결함이나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개인주의자로 치부되기 쉬운 현실이다.
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느냐는 질문을 받는 노처녀, 노총각들에게 혼자인 삶은 선택이 아닌 어쩌다 보니 갖추어진 삶의 방식일 뿐이다. 똑같은 예로 사별과 이혼, 별거, 가족의 불화등으로 뿔뿔히 흩어진 사람들 역시 본인이 원했다기보단 처한 현실과 상황이 이끈 삶의 형태였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 내 관계밀도 과잉에 치인 삽사십대 중년들이 때로 자신만의 치타델레를 꿈꾸는 것은 생략된 혼자남녀들의 고충을 차마 알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젊음, 경제적 능력, 독립의지등 혼자 사는 삶의 필요충분조건은 말처럼 쉽지 않다. 자유로운 삶을 꿈꾸면서도 무거운 역할가면을 쉬이 벗어던지지 못하는 건 안정된 지금의 삶이 혼자인 삶의 불안정함보다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쁨, 슬픔도 나눌 수 없고 역할분업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 1인 가구의 일상은 4인 식탁에 앉은 사람이 상상하는 것보다 고독하고 청승맞은 경우가 많다. 생활비가 1/n로 드는 것도 아니고 매일 원맨쇼를 자처해야 하는 궁색하고 바쁜 하루는 정작 그 생활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부러움과 판타지의 대상으로 포장되곤 한다. 집단주의에 매몰되었던 과거에 비해 개인의 감정과 선택이 중요시되는 현 사회풍조에 맞춰 낭만적 만남에 대한 기대는 점차 커지고 연애의 빈도는 잦아지나 불확실한 남녀관계에 의해 결혼 자체는 망설이게 되고 그 결과로 미혼과 비혼이 급증하는 현상. 바로 저자가 말하는 1인 가구 젊은이들이 늘게 된 배경이다.
언젠가부터 골드미스, 차도남이란 말이 생겨나고 혼자인 삶을 영위하는 것은 그에 걸맞은 부와 시크함을 두루 겸비한 능력자만이 누릴 수 있는 극소수의 사치가 되버렸다. 스웨덴을 비롯한 서구 여러 나라에서는 가족을 떠나 독립하는 시기가 한국보다 유난히 빠르고 1인 가구의 비율 역시 압도적으로 높은 데 반해 그에 따른 사회적 병폐인 고독사나 무연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이유인 즉슨, '기본소득'과 '주거공동체'라는 자립을 뒷받침하는 튼튼한 복지제도와 함께 어미새가 새끼를 둥지에서 떠밀듯이 자연스레 독립을 받아들이는 사회문화가 깃들어 있기 때문인데, 역시 멀지 않은 비슷한 구조의 사회를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참조해야 할 장점이 아닌가 싶다.
홀로서기를 꾀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세계로부터 고립시키려는 자폐의 의지가 아니라 우리가 자신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과잉화된 '일반화된 타자'와 거리를 두는 능력의 획득을 의미한다. -p.190
집단 속에 오랜 세월 머물러 있던 사람이 홀로서기를 한다는 건 한국과 같은 경우 흔치 않은 모델 없이 부딪히는 맨땅에 헤딩과도 같다. 노후에 대한 불안, 건강악화, 경제적 압박은 사회가 단독인들을 바라보는 '이상한' 시선과 함께 싱글족들의 불안요소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혼자만의 탑에서의 즐거운 고독이 절실한 사람들은 기꺼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고 집단으로부터의 탈출을 감행한다. 그것은 존재의 또 다른 형태로써 결핍이 아닌 '자기밀도'의 최대화를 꿈꾸는 단독인의 몸부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