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꿈결 클래식 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이병진 옮김, 남동훈 그림 / 꿈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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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도련님>은 지난 리뷰 <국화와 칼>등과 같은 일본 문화를 살펴보는 책에서 종종 인용되곤 하던 작품이어서 언젠가 읽어보려고 했는데 좋은 번역본이 서평책으로 들어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기회였다.


작중 화자인 '나' 도련님은 작가인 나쓰메 소세키의 자의식이 투영된 인물로, 불우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하녀인 기요외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천덕꾸러기 이미지로 재현된다. 이야기속에서 고집있고 외곬에 승부욕이 강한 도련님은 시코쿠 마을의 신참 수학교사로 부임하고 나서도 도쿄 출신으로서의 우월감에 휩싸여 속으로는 '촌놈' 운운하며 교원들과 아이들을 곧잘 무시하곤 한다. 정의롭고 의협심 강한 성격에 입에 발린 소리 역시 참지 못하는 이 못말리는 천방지축 교사 눈엔 일명 '빨간셔츠' 교감과 '너구리' 교장, '아첨꾼' 미술선생과 같은 부도덕한 인간들이 항시 눈엣가시다. 그가 본 그 곳 학교와 하숙집을 둘러싼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체면과 남의 시선을 중요시하고 출세에 급급한 사람들은 윗사람에게 아부를 떨거나 이해타산적인 머리로 곁에 둘 자와 멀리할 자를 확실히 구분해 처리한다. 숙직실 난동사건과 사람 좋은 '끝물호박'에게 가해진 강제 전근, 그리고 그 비리에 연루된 치정은 누군가에겐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되고 공공연히 뒤에서 까발려지는 뒷담화들이 오늘날의 부조리하고 감시적인 사회 전체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다. 또한, 부당 전근에 맞서 옳은소리를 외치는 도련님에게 대충 넘어가라며 회유와 협박을 하고 학교 vs 학교의 싸움이 허위기사로 나도 기득권층에 매수된 언론과 허수아비인 경찰, 법 역시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음은 그 후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공감대가 형성되는 안타까운 부분이다.

소설은 전형적인 일본인의 감정선이 잘 드러나 있어 그들 문화와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데, 이유없는 호의을 거절하는 장면이나(월급인상과 빙수값 다툼) 무사도 정신과 남자다움의 강조, 사회적 평판에 유독 목을 매는 점 등은 일본국민들 고유의 대표적인 정서 반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세키는 비록 자기만의 세계관과 무모함으로 똘똘 뭉친 캐릭터이긴 하나 주인공 도련님을 의리 있고 타인과 자신을 관찰하는 눈이 날카로우며 사회악을 처단하려는 비장함마저 갖춘 '다수 속의 소수'로 그려냈다. 그 와중에 엿보이는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문장은 소설을 지루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에피소드인양 빠져들어 읽게 하는 마력이 있다. 말로썬 도통 해결방법이 요원함을 깨달은 주인공 도련님은, 빙수값 1전5리의 신경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정으로 의기투합한 '아프리카 바늘두더지' 홋타선생과 함께 완력으로나마 악인들을 굴복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느끼게끔 하는 권선징악의 결과로 마무리짓는다.


사실 일본인의 정서상 남의 무시를 극도로 싫어하는 반면 소설 속 도련님은 끊임없는 마음 속 깔보기와 불평 불만으로 하루를 채우는 걸로 보아 말하진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공기 속엔 무수히 소리없는 증오와 욕설, 혐오스런 감정들이 부유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소한 일상과 상념들의 연속을 일기와 회고의 형식으로 옮겨놓은 작품이지만 <도련님>은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많은 생각거리와 숙제를 던져준다. 그것이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책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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