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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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이후로 김인숙 작가의 작품은 두번째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작가의 가치관이 투영되기 쉽지 않아 이번 소설이 처음처럼 다가왔다. 그런데 공교로운 건 이 책이 세월호를 향한 목소리인 <눈 먼자들의 국가>를 덮은 후 바로 다음 책으로 선택되어졌다는 점이다. 물론 내용도 모르고 스포도 안봐서 제목만 읽고는 그저 아름다운 소설이겠거니 생각하고 마음의 정화라도 하려 했건만, 이 무슨 우연의 조화란 말인가.


기차사고. 이젠 뉴스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집단사고의 한 형태가 되버린 것. 그 날 사고현장에는 웹툰작가 백주와 희중 부부, 그리고 태어난 지 얼마 안된 그들의 아이가 있었다. 기차에 불이 피어올랐고 조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밖으로 내던졌지만 결국 자신은 살아남았고 아이는 목숨을 잃게 돼 떨칠 수 없는 평생의 죄책감이 시작된다. 사고의 책임과 원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기관사부터, 자살을 시도한 트럭운전사, 그에게 급여를 미룬 사장, 환경단체, 하물며 철새들까지. 따지고 들어가자면 하필 그날이 생신인 고인이 된 희중의 부친과 대전집으로 초대한 어머니까지 끝도 없었다. 재난을 당하면 도대체 누구에게 원망을 하고 책임을 물어야 할지 모르겠는 현 시대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생환자인 조안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셀 수 없는 많은 약에 의존하는 의미없는 생활로 하루하루를 그야말로 지옥처럼 살아간다. 그런 와중에 윗층으로 이사 온 백주가 기차 사고 현장에 있었던 또다른 목격자였던 건 그저 우연일까. 자신만의 좁은 세계에 갇혀 소통하길 거부하는 조안은 백주에게만은 왠지 마음을 열고 아픔을 나누고 싶다. 백주의 기억 속 죽은 정희와 똑 닮은 그녀가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이.


백주는 죽은 정희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 싶었다. 사고로 삼촌과 그녀까지 모두 잃게 될 줄 몰랐던 그의 행동이 오랜 후회를 낳게 했고 그것은 아래층 조안에게 옮겨가 위로로 바꾸어 전해진다.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매일을 술에 절어 지내고 약사인 자신조차도 발작과 두통에 시달리지 않는 날이 없는 희중. 그의 어린 과거 속 아버지는 또 다른 진실과 거짓으로 봉인된, 알 수 없는 연막 속에 가려져 가슴 속 깊이 비밀로 간직되어 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소년기. 12살 희중의 여름방학을 악몽으로 얼룩지게 만든, 기억조차 하기 싫은 그 사건은 '노란 머리핀'이라는 작고 예쁜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그와 어머니와의 비밀로 함구된 그 무시무시한 사건파일은 또래들로부터 주목받고 싶었던 치기어린 감정의 비극적 결과였다. 이야기는 희중과 조안, 백주, 상윤 각각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매 순간을 기록한다. 잘 읽히지만 지금 우리 시대를 너무도 리얼하게 반영한 소설이라 아이러니하게도 책장을 쉽사리 넘기지 못했던 책이다. 모든 사고는 수많은 우연과 선택의 기로에서 결정된다. 그런 이유로 어느 누구에도 책임을 묻지 못하는 우리는 자책감과 절망에 빠진다. 아픈 가정사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죽고 517호로 이사 오는 백주의 사연이 밝혀짐은 기실 우리 모두 각각의 사연이 없지 않음을, 실로 알 수 없는 수많은 고리로 얽혀 있을 가능성을 말하는 듯 하다.


사고로 식구와 지인을 잃은 사람에게 10년, 20년이면 다 잊어지지 않느냐는 타인의 질문은 이 소설을 읽고나면 무심하고 소용없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아주 어릴때 죽은 자식이 있는 부모는 세월이 흐르면서도 잊지 않고 그 아이의 생일을 챙기고 나이를 더해나간다 한다. 살아있으면 몇살일텐데.. 부질없는 마음이지만 그게 부모의 마음이고 결코 없어지지 않는 슬픔인 것이다. 미치지 않고선 일상을 영위할 수 없는 살아남은 자들의 애환을 사무치도록 잘 그려낸 소설이 너무 아프고 애절하다.



"내가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서웠어. 다시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아서가 아니라 아직도 행복해지길 바라는 게 말이야" - p.320


"혼자가 되는 게 무서웠다고.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다시 여름방학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 그런 개같은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나한텐 당신도 있고 아이도 있는데....우린 그렇게 완전해질 수 있는데... 다시는 혼자가 될 수 없었어 조안."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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