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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3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 중에 제법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게 표지디자인인데 여태껏 봐왔던 책표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 김영하 작가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초판본과 레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이다. 자살과 살인. 본능적인 거부감과 함께 밀려드는 기묘한 끌림이 있는 두 주제를 각각 다룬 책들인데 러벤펠드의 책은 두께의 압박과 정신분석학이라는 머리 아픈 학문이 결부된 소설이라길래 선뜻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문학에 대한 스펙트럼이 무한히 넓어진, 현 21세기가 아닌 90년대의 나의 사춘기 시절에, 김영하의 화려한 문단 데뷔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소설을 일찍이 접했다면 적잖이 새롭고 충격적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사실로써 가능한 일들만을 텍스트로 담아내는 게 상식이었달까. 암튼 그 시절 환상문학이란 내게 듣도 보도 못한 또다른 세계였을테니 말이다.
그의 소설엔 자주 등장하는 코드들이 있다. 그것은 살인, 자살, 섹스, 마약, 폭력, 착취 뭐 이런 것들이다. 대체로 어둡고 음울하다. 얄팍한 책이라고 안심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가 하루 종일 우울증 비슷한 증세가 왔다. 소설에서는 '자살조력자'로 등장하는 화자가 있고 그가 쓰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또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아니면 그와 함께 했던 여자들의 실제 이야기거나) 조화로 집을 장식하고 어린 시절 그가 즐겨했던 박제행위와 현재 그가 작업 중인 비디오 아트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인다. '불멸'. 그것은 아름다움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그 만의 꿈이다. 그러나 인간인 자신은 글을 쓰거나 자살을 돕는 일을 하며 '신'임을 자처한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섹스를 하는 남녀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혹은 결핍의 욕구를 채우고자 끝없이 몸부림치다 자살로써 자신을 증명한다.
언젠가 tv에서 윤심덕이 가슴 아픈 사랑을 마지막으로 남긴 '사의 찬미'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노래는 슬프고 담담하고 처연했으며 허망함마저 느껴지는, 그러나 죽음이 두렵게 느껴지진 않는 가사와 가수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조용히 울려서 기분이 울적해지거나 공허감이 들때면 찾아 듣곤 했다. 미학적 죽음을 그린 이 책이 90년대의 반사회적인 분위기와 함께, 인간 본연의 생존의지에 맞선 극단적 욕망이 합치된 거대한 덩어리로 내게 다가오는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