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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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인재라고 다들 그랬다. 이미 낡을 대로 낡은 배였고 화물 적하량도 기준치에 훨씬 초과된 상태. 거기에 '가만히 있으라'는 지나치게 침착을 요구하던 유령같은 선내방송. 이 모든게 '사고'가 아닌 '사건'이길 자초한 단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책을 읽고 한참을 생각한다. 작년 4월 16일 이후 달라진 건 무얼까. 윗선들의 재난대비책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2014년은 일주일이면 멀다하고 벌어지는 사건사고로 인해 얼룩진 비극의 한 해였다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통감하고 있다. 재난 생중계라니,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이는 고의적인 방관자로, 대다수의 아이들을 둔 부모들과 선생들은 남의 일 같지 않아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수 없이 사태를 지켜봤다. 그 큰 배가 고꾸라질때 선박 안의 아이들과 무고한 시민들은 외려 담담했고 숭고했으며 정치인과 운항책임자들은 저마다의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느라 머리 굴리기에 바빴다. 

집에 tv가 없는 나는 그날 새벽 내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생존자 소식에 목이 말라 있었다. 배 넘어간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귀로 스며들었을 때 언제든 나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무작위로 번호를 불려 문제 풀기에 걸리듯 그렇게 우리는 언제든 랜덤으로 재수없게 걸릴 수도 있다고. 한국이란 나라는 더 이상 살만한 안전한 국가가 아니라고, 함부로 태어나기엔 위험한 곳이 되버렸다고 사회학자 김홍중은 말한다. 탈존주의. 현 시국에 이보다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얘야~ 이 나라는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야. 신중히 생각을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렴. 그가 소개하는 이야기 속 에피소드는 더 이상 픽션에만 국한되지 않는 듯 하다.


 정부는 구조작업을 사기업에 떠넘기고 사고 동영상을 가져오라며 눈 앞에 보여지는 것에 일단 안도하려는 안일한 태도를 취했다 한다. 한 두명도 아니고 몇백명이 승선한 배가 침몰'중'이라는데.... 참으로 한가한 반응이 아닐 수 없다.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정말로 역사는 진보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인간의 자본과 이익을 위한 기술은 발전으로 향할지언정 국민을 위한 안보와 원시적인 생존을 향한 대책과 안전의식은 갈수록 풍전등화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인당 국민 소득이 얼마니 하는 것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 운운 하기 전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면면에 자리한 나라 수준을 직시해야 할 일이다. 자살률과 사건,사고발생률. 하지만 지난 사건들을 오래도록 환기하고 죽은 희생자들을 추모, 사건의 진상 규명과 대책을 촉구하는 행렬이 이젠 지겹다 하는 뻔뻔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불온세력으로까지 몰아가는 이들에겐 아직도 사건과 죽음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몇 번의 외양간 수리를 거쳐야 소가 소중함을 깨닫게 될까.


이제는 누구나 다 안다. 우리도 당장 죽을 수 있는 시절이다. 이를 새삼 확인시켜주면서 텔레비전 속 세월호는 나를, 죽어가는 타자에게 깊이 관여시켜버린다. 죽음이라는 공통조건에 기반을 둔 결속 효과다.  - p153


작가 김애란의 말처럼 사건은 잊힐지 몰라도 4월 16일에 관련된 상징들을 우리는 오래도록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세월, 팽목항, 진도, 수학여행, 안산단원고.....  수많은 키워드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그에 관한 화제가 나올 때마다 멈칫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국민 모두의 후유증이 될 것이다. 공적 무능력에 절망하고 누구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진 불신사회. 이 속에서 우리는 누구라도 '인간성' 상실의 바닥친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느낀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곪을대로 곪아 결국엔 세월이란 이름으로 가라앉고 말았다는 박민규 작가의 말이 깊게 가슴에 박힌다. 혹자는 국제적 망신이라며 혀를 차지만 나라의 수치심을 느끼기 전에 우리 자신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할 때이다. 그리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이 구멍뚫린 사회에서 알아서 살아남는 것만이 절실한 생존규칙이 되버렸기에, 사건을 잊지 않고 끝없이 되새김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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