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보이지 않는 세계, 후각의 천재. 그런 희대의 천재 살인마가 정말 역사적으로 있었다고 여겨질 만큼 디테일하고 해박한,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지식과 말빨에 감탄했다. 정작 자신은 무취의 존재이면서 세상의 모든 향을 지배하고 통제하며 종국엔 그 성스러운 조합으로 그 앞에 전부를 굴복시킨 그르누이. 파리의 악취 속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불길한 존재로 파양을 거듭 당하다, 무두장이를 거쳐 몰락한 향수 제조인 발디니를 만난 건 운명이었다. 그르누이의 능력을 알아챈 그는 그 천재성을 이용하여 재기에 성공하고 어마무시한 부를 얻는다. 그러나 그르누이가 지나간 곳엔 번성과 함께 죽음이 곧 찾아든다. 마치 일생의 부를 한 번에 다 주고 재빠르게 숨을 거둬가는 것처럼. 혹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듯이. 좋은 향을 가진 꽃과 잎은 그 영혼을 내어주고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숙련된 기술에 체취를 빼앗긴 소녀들의 시신은 거죽에 불과했다.

소설은 인간이 가진 탐욕과 소유에 대한 끝없는 갈망을 그린다. 키 작고 어리숙한 청년에게 행해진 지위고하를 막론한 찬양과 경배는, 그들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향'이라는 꺼풀 때문이었다. 위생적인 하수처리가 발달하지 못했던 18세기의 프랑스에선 온갖 악취를 향수로 덮어씌우고 그렇게 냄새가 뒤범벅된 세상에 사람들은 길들여졌다. 지상에서 가장 신성하고 매혹적인 향을 얻기 위해 그르누이는 화룡점정인 로르 리쉬를 비롯해 무려 25명의 여인들을 살해한다. 그 과정에서 죄책감은 커녕 퍼즐을 짜맞추는 듯한 희열과 만족에 도취된 그가 비로소 그 궁극의 향을 만인 앞에 선보였을 땐 쾌락과 무아지경에 빠진 인간들을 보며 승리의 기쁨과 함께 알 수 없는 역겨움과 환멸이 밀려옴을 느낀다. 인간의 냄새를 갖고 싶었던 그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최고의 향에 현혹된 집단에 의해 처참히 사라지고 만다.

태생부터 결여된 체취와 타고난 후각. 신은 그에게서 당연히 있어야 할 냄새를 빼앗고, 대신 그것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향을 제조하는 방법에 있어 다양하고 구체적인 서술이 마치 그 시대를 거슬러갔다 온 듯이 눈에 선한 것 하며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 특히, 자기망상에 빠져 허우적대거나 주인공이 상상 속에서 마음껏 향을 취하고 거느린다는 설정 등은 가히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이 아깝지 않을만큼 말로 요리를 한다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또한 환락의 파티장이 된 마지막 부분은 고상한 품위 속에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이나 잠재된 욕망이, 향이라는 촉매에 의해 일순 외부로 표출되는 장면이라 원작과 영화 모두에서 강한 이미지로 남았다. 그는 사람들의 일반적 편견을 깨뜨린 순진무구하고 전혀 다른 형태의 악이었다. 순수에의 욕망에서 비롯한, 기막힌 천재에 의한 참극과 파멸.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것은 그르누이의 기묘한 세계관이 이끈 예정된 결과였을까.

작품은 보통의 범죄 스릴러물과는 달리, 가해자인 그르누이의 천재성과 성격,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경위와 과정을 대단히 미학적이고도 깊이있게 파헤친다. 그리고는 독자로 하여금 그의 시선을 철저히 따라가며 어쩔 땐 그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느끼며 나아가선 그러한 행위의 당위성까지 부여하고 그의 편에 서서 인간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공감케 한다. 다시 말해, 살인자의 잔인한 수법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역설적으로 질투와 체면, 시기와 욕심, 속물적 근성을 체취와 향수라는 가면으로 뻔뻔스레 포장한 인간들을 비판하는 것으로, 이는 장르 소설의 경계를 넘어 그 문학적 의미를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것이다. 천부적인 후각도 무취의 저주도 차라리 알지 못했더라면 그르누이는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작가의 말대로 질긴 생명력이 어쩌면 그 지독한 삶을 받아들이게 된 운명의 시작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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