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84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난주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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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발표된 나쓰메 소세키의 처녀작이다.작중 화자는 '구샤미'라는 영어선생 집에 얹혀사는 고양이다. 고지식한 이 선생이 하는 일이라곤 허구헌날 서재에 박혀 잠을 자거나, 집으로 찾아온 문하생과 동문들에 둘러싸여 만담을 나누는게 고작인데 그 풍경을 동물인 고양이의 눈을 통해 시니컬하면서도 해학적으로 그린 점이 유쾌하다. 그의 집을 들락거리는 이들은 마치 자신들이 대단한 미학자나 예술가인양 저마다의 지론을 펼치지만 종국엔 서로의 지식대결과 아무말 대잔치로 변해 매번 흐지부지되기 일쑤다. 이런 대화들 곳곳에 숨겨진 인간의 자만과 허위의식은 묵묵한 고양이의 심리 속에서 낱낱이 들춰진다.

주인 구샤미는 소세키 본인이 모델인만큼 외모와 성격, 직업과 사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이 닮아있다. 소설은 단순한 에피소드 몇가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데 근대화가 진행되던 무렵인 일본 메이지 시대 당시, 돈과 권력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사업가(가네다)와의 신경전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 부분인 듯 하다. 그것은 격동기 직후, 가문의 몰락을 겪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본연의 지향 자체가 그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또한 현 시점에서 보면 자칫 여성혐오로 비춰질 요소가 다분한 구절이 많은데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좀 거북했다.

표면적으로는 구샤미=작가이지만 때론 그의 살롱(?)멤버들과 고양이가 하는 말이 가히 언중유골이며 촌철살인일 때가 적잖다. 등장인물 모두가 하나같이 박학다식하며 소세키의 분신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진지에서 뜬금포로 빠지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하지만 내겐 그 방대한 지식의 스펙트럼이 너무 벅찼던걸까. 100년도 더 된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번역 탓을 해보지만 잠깐의 담화 속에서 동서양 철학자와 위인들을 한데 불러 모으고 그 명언까지 줄줄 읊어대는 장면의 연속은, 현학적으로 젠체하는 꼴불견인 건 차치하고라도 좀 지루했음을 고백한다. 허나 소세키가 이른 높은 지식의 경지에 감탄한 것은 물론이다.

한편, 작가 연보를 보니 소세키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두 형을 잃었고 양부모의 이혼과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에 늘 신경쇠약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것이 그를 염세주의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문학으로의 정신적 도피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나 짐작해 본다. 이러한 경험을 반영한 듯, 작품 말미에는 먼 미래엔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사회가 도래하여 신분이나 계급에 따르는 위엄도 사라지고 점차 비혼이나 별거가 당연시되는 세상이 올 거라고 누군가 농담섞인 주장을 하는데 섬찟했다. 그야말로 1인가구가 대세인 오늘날의 예언 아닌가.

이 소설은 무심한 듯 통달한 고양이의 시선을 빌려 뒤틀린 인간 세상 전체를 비판하는 동시에 반성하게 하는 이야기다. 우둔한 멍청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족속, 스스로 고통을 자초하는 존재. 그것이 인간이다. 작품이 쓰여진 지 한 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예언이 맞아떨어졌을 뿐. 만약 고양이가 아닌 다른 동물이 그 자릴 대신했다면 이토록 대작이 되었을까. 소세키가 키웠다던 고양이에게서 영감을 얻었는진 모르겠지만 적절한 캐스팅이다. 음성지원이 될 정도니 말이다. 읽다 보니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문장이 참 많았다. 시간이 나면 중요 구절을 따로 필사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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