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박완서 지음 / 창비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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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접한 건 부끄럽게도 이 책 <두부>가 처음이었다. 현재는 <아주 오래된 농담>과 <엄마의 말뚝>도 읽은 상태지만 본인의 경험과 가치관이 듬뿍 담긴 이 산문집을 먼저 보고 느낀 첫인상이 참 좋았다고 생각된다. 생전 그 분의 작품을 읽어보아야지 결심만 해놓고 정작 작고하신 뒤로도 한참이나 지나서 찾아보게 되었는데 듣던대로 글을 정말 잘 쓰신다. 자신의 유년기와 젊은 시절을 지나온 생생하고 소박한 이야기들. 그 속엔 마치 내 할머니가 해주시는 옛날 이야기처럼 재밌게 읽혀지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결코 진지해지지 않을 수 없는 그 시대 - 전쟁과 일제 치하 - 의 뼈아픈 상처 또한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훗날 문학인으로서 그 모든 증언을 하고 말리라' 힘든 그 시기를 참고 견딜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바로 그것이었다고.

역시 문학애호가셨던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가정교육은 작가 '박완서'의 청민함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똑부러진 '돈'에 관한 철학이나 정치꾼들을 향한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는 대목이 그걸 느끼게 한다. 또 일반인들은 그냥 지나칠 법한 별 것 아닌 일이 당신의 눈과 귀를 거치면 의미있는 헤프닝이 되어 글감이 되고 깊은 울림을 주는 계기가 된다. 꽃이 피고 스러짐과 한낯 미물이 허물을 벗고 계절이 바뀌는 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그와 다를 게 무엇인가. 세월이 흘러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날 때, 자신 또한 담담히 그것에 대해 말하고 준비할 수 있었던 초연한 자세에서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그녀는 사회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고 작가로서 그것들을 글로 풀어쓰려는 심지 또한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글 사용이 금지됐던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그리고 우리 언어가 있다는 것과 글쓰기의 자유로움을 더 이상 감사함으로 여기지 않는 요즘. 그녀가 느꼈던 정신적 억압과 문화 전반의 굶주림이 생경하게 대조되면서 생각거리가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이제 막 그의 글을 읽기 시작한 입장에서 성급히 문학관을 판단할 처지는 못되지만 박완서라는 작가는 현 시대를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현학적이지 않은 문장으로 거의 모든 연령대를 아우르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작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흙에 노녔던 그녀의 소박함을 아직 읽지 못한 남은 작품으로나마 천천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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