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 지음, 박준형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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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가 어떠한 사람인지 잘 몰랐다. 그런데 비즈니스 세계의 꽃인 마케팅 영역을 구축한 데 기여한 인물이라니. 그래, 유명한 사람이라고 치자. 어째서 자본주의를 대놓고 옹호할 것 같은 사람이 자본주의에 메스를 대자는 거지. 처음엔 이 점이 의아했다. 책을 읽으면서 의문이 하나둘 풀려나갔다. 


결론부터 말하자만 코틀러는 제대로 자본주의를 옹호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단 코틀러가 전제하는 자본주의가 어떠한 자본주의냐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자본주의 하면 '돈 놓고 돈 먹기' '승자독식' 정도로 이해하는지 모른다. 그런데 코틀러는 그런 식의 '카지노자본주의'가 결국 자본주의를 망친다고 역설한다. 


자본주의는 중산층을 두텁게 형성해 사회를 안정하게 하는 경제체제인데,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는 결국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소비를 위축시킴으로써 경기침체를 불러와 자본주의 체제를 위협한다는 관점으로 이해된다. 경제에 문외한인지라 단순하게 이해하는 것인지 몰라도 그렇게 생각된다. 그러면서 노동자에게 월급을 대폭 인상해준 헨리 포드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 같다. 


책을 쭉 읽으면서 코틀러가 설정한 자본주의가 나름 급진적이라는 느낌도 받았다. 코틀러가 이야기하는 자본주의가 정말 가야 할 방향이었다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얼마나 일면적으로 이해했던 것인가 싶다. 코틀러 식의 이야기를 한국에서 했다면 '좌빨'소리 듣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점이 아리송한 점이다. 


코틀러가 말하는 미국의 풍경을 보니 갑갑하다. 그 나라도 최저임금은 형편없고, 대학 나오면 빚쟁이가 되고, 집에 목숨 걸고, 카드빚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구나. 때문에 코틀러가 제시한 여러 처방은 마치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다. 또 정치인과 로비스트. 중요한 법안을 저지하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법안은 통과시키는 모습 속에서 코틀러는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을 한다. 결국 경제문제는 정치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여튼 코틀러의 여러 논의를 보니까, 최근 한국에서 제기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이 딱 떠올랐다. 코틀러도 말했듯이(꽤 자조 섞인 투로) 현재 자본주의가 빚으로 지탱되는 경제인 측면은 정말 심각하다. 혹자는 지금의 성장을 '부채주도 성장'이라고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정말 걱정이 앞서는 대목이다.


코틀러가 제시한 대안들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에서 보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꽤 현실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튼 코틀러는 자본주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인 듯싶다.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 너무 걱정만 하지 말고, 무엇을 걱정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기 위해 이 책을 읽어 보면 좋겠다. 책을 읽다다 답답함이 더 가중되기도 했지만, 다른 쪽에서 막힌 게 뻥 뚫리는 기분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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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틀러의 다른 자본주의 - 우리 삶이 직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14가지 길
필립 코틀러 지음, 박준형 옮김 / 더난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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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러 사실 잘 몰랐던 사람인데. 꽤 유명한가 보다. 이렇게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명쾌하게 설명한 책은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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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탄생 -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믿음의 역사
프레데릭 르누아르 외 지음, 양영란 옮김 / 김영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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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다. 신에 대하여 종교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한 몇 가지를 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예전부터 궁금해했던 조로아스터교와 유대교의 관련성은 흥미롭다. 조로아스터교는 유대교에 구원관을 심어주었다는데, 그건 그리스도교까지 이어졌겠다. 예수의 신성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에 대해 기존의 그리스도인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저자는 역사성과 신앙이 부딪칠 수 있는 지점을 숙성이란 관점에서 부드럽게 풀어간다. 축자적 믿음에 기반한 그리스도인에게는 지극히 불경스런 일이겠지만.

그리스도가 대세였던 사회에서(물론 지금은 쪽박신세인 감 없지 않으나) 오히려 교조적이지 않게 풍성하게 읽어가는데, 우리 풍토에서는 어떨지. 하긴 나름 열려 있다 생각한 후배들에게 12월 25일은 원래 미트라우스교의 축일 그러니까 이교도의 축일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전했음에도 기겁하던 기억이 난다. 축자적 믿음은 그리스도교의 풍성함을 고사시킨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 다수가 이런 책을 열린 마음으로 읽고 그 본원적 의미를 치열하게 찾아가면 사탄의 또 다른 형태 '개독'은 발붙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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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 현대편 -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현대 경제학을 만나다 경제의 교양을 읽는다 시리즈
김진방 외 지음 / 더난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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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현대세계에서 경제를 모른다는 건, 나침반 없이 드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이 책에서는 한 번 들어는 본 듯하지만 참 막막했던 이야기들을 명쾌하게 보여준다. 훤하게 펼쳐지는 경제학의 지도가 머릿속을 시원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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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한재훈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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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읽는 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중 하나이며, 자신과 세상을 알아가는 소리이며,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가는 소리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서당의 이미지는 글 소리로 어우러져 다분히 청각적이다. 거기에 김홍도의 <서당도>와 스승의 회초리 등 몇 가지 시각적 이미지가 가미된다. 하지만 서당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공부했는지,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는 모른다. 서당교육은 이제 보편적이지 않고 한물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 박물관에서나 접할 수 있을 듯한 서당의 모든 것을 생생하게 불러오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 책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의 저자 한재훈이다. 이제 40대 초반의 그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고 제도교육을 뒤로하고 서당에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저자의 아버지가 “교육은 한 사람을 ‘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며 이에 적합한 곳이 서당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철학 때문에 저자의 형제들은 모두 서당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저자는 자식들을 다 서당에 보내 공부시키는 것을 주위에서 만류했다는 점을 고백한다.

하지만 서당을 하나의 소중한 운명으로 여긴 한재훈은 스스로를 “전통서당의 마지막 은혜를 입은 한 사람의 후예”라고 한다. 이에 서당에서 직접 공부하고 경험한 것을 소중하게 남길 책무로 이 책을 썼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사라져가는 옛 교육에 대한 보고서의 성격을 갖지만, 그저 사실을 기술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 안에서 현재에도 되살리고 길어 낼 참공부의 길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서당 공부의 백미는 무엇보다 글 읽기, 암송에 있다. 서당의 하루는 글을 암송하면서 시작하는데, 학도들은 매일매일 새로운 글을 배워서 백 번 정도 읽고 외우게 된다. ‘독서백편의자현’은 글을 지속적으로 반복해 읽고 암송함으로써 글의 섬세한 결을 느끼고 글이 담은 깊은 뜻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를 “문리가 났다” “문리가 트였다” “문안이 뜨였다”고 표현한다. 글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마음에 남아 각자의 삶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쳐야 한다. 이처럼 배운 바를 완벽한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익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서당의 학동들을 고심하게 만드는 건 무엇보다 한시 짓기다. 오언과 칠언의 절구와 율시로 쓰는 한시는 운자와 성조를 고려해 써야 하기에 여간 힘들지 않다. 운자와 성조가 맞지 않아 기껏 구상했던 시를 포기하고 새로 구상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운율이 있는 시적 표현으로 담아내는 시 짓기는 학문의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이다. 스승은 제자의 시를 보고 잘된 부분에는 ‘관주’를, 고쳐야 할 부분에는 ‘작대기’를 표시하면서 제자와 학문적 교감을 나눈다. 서당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교육은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 전인적 인간을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진다.

오래된 공부를 통해 배움의 참 의미를 묻는다

저자는 15년 동안 서당교육을 받다가 현대학문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 입시를 치르고 고려대학교 철학과에 들어가 졸업 이후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저자는 이처럼 두루 전통교육과 현대교육을 거친 이색적인 경험을 갖고 있는데, 그로 인해 좀 더 넓은 안목으로 지금의 교육 전반을 조망해내기도 한다. 한재훈은 “서당에서 공부한 것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안교육을 받은 셈”이라고 말한다.

사실 서당에서 이뤄지는 이런 교육 과정은 오늘날 교육의 여러 문제점도 돌아보게 하고 보완할 수 있는 측면을 보여준다. 비록 서당교육이 퇴조했지만 경쟁교육, 서열화교육으로 심하게 굴절된 지금의 교육에 풍성한 대안적 가치를 제시해주는 것이다. 전통교육과 현대교육을 두루 거친 저자는 경계에 서서 그 지점을 적시해준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가르침과 배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다. 배움에서 ‘위기지학(爲己之學)’의 의미를 깊게 해석하는 과정에서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위기지학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신만을 위한 배움’으로 이기적 공부처럼 비쳐지기도 하며, 오히려 ‘남을 위한 배움’ ‘위인지학’이 긍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배움을 통해 앎을 얻고, 그 앎으로 인해 나의 관점과 사유가 성장하고, 그 결과 성숙한 인격을 가진 내가 된다.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나서부터 나의 인격을 성숙시키기까지 이 흐름은 온전히 내 안에서만 흐른다. 나를 벗어나지 않고 내 안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키는 흐름, 이것이 바로 ‘위기지학’ 즉, ‘나를 위한 배움’이다.

반면 ‘위인지학(爲人之學)’에서 앎을 취득하는 이유와 앎을 활용하는 방법, 그리고 앎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현저히 달라진다. ‘남을 위한 배움’은 취득한 앎을 상품 가치의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활용하게 된다. 남의 평가에 연연하고 세상에 아부하게 되는, 어떻게든 세상의 눈길을 끌어보겠다는 자신이 배운 학문의 본질정신을 왜곡하는 것으로, ‘곡학아세’로 귀결된다.

이 대목은 최근 국민을 기만하고 국토를 황폐화한 4대강 사업에 관여한 학자들의 태도와 관련해서 많은 점을 시사한다. (사실 4대강에서만 그랬는가만!)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고(양심이 과연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때가 많지만) 오로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권력과 자본에 복무하는 지식인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본연의 역할을 외면한 채 지식을 적당히 팔아먹고, 그럼으로써 지식사회의 위기를 불러왔다.

이제 제도로서 서당교육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외형상 변화를 겪지만, 그 안에 내재한 어떤 지속성과 유효성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21세기 훈장 한재훈은 생생한 서당 공부의 경험을 통해 그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교육은 얼마나 심각하게 병들어 있던가. 핀란드 이야기하고, 독일 이야기하고 다 좋은데,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적 경험도 돌아볼 수 있다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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