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진술서 - 나를 바로 세우는 이별의 기술
김원 지음 / 파람북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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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 해외 펜팔을 하면서, ‘이혼에 관한 문제는 문화적 차이로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특히 서구 쪽 친구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때, 한국 청소년의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마음 상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 경우엔 영어가 능숙해서 오히려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영어가 짧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하여간 펜팔 매뉴얼에도 언급될 정도로 잘 다뤄야 하는 문제다. 그 때문인지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divoce’란 단어가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혼에 관한 이런 이야기도 정말 옛날 옛적 이야기다. 요즘엔 아주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아주 예외적이거나 사변적인 일은 아닌지라 많이 받아들이는 편이다. 사실 예전에도 이혼은 적지 않았을 텐데, 주위의 편견으로 당사자는 물론 그 자녀까지 마음고생만 심했을 터다. 한국은 정말 다양한 삶의 모습에 대해 가만두지 않는다. 어떻게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관심 있는 척 상처만 긁어댈 때가 많다. 여기서 개인주의란 가치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주의를 엄청나게 오해한다. 부정적 용례도 쓰일 때 그 개인주의는 파편화나 고립화에 더 가깝다. 우리가 보편적 가치로 믿는 민주주의나 종교적 자유 등도 다 개인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것이건만, 전체주의나 독재를 비판하면서 그걸 가장 강력하게 견제할 사유인 개인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의식적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개인주의의 상극은 공동체주의가 아니라, 공동체주의의 탈을 쓴 학연적 혈연적 지역적 이기주의일 뿐이다.

 

이혼 문제는 서구에서 이미 심하게 갈등의 역사를 겪었을 것이다. 특히 보수적인 가톨릭권 국가에서는 이혼이 세속의 법에서도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이 있다. 아마 대표적인 나라가 아일랜드일 텐데, 이제 그 나라는 동성 부부를 허용하는 쪽으로 일취월장하고 있다. 중학교 견진교리 시간에 가톨릭 신자의 혼인에 관해 강의를 듣는데, 여러 이혼 사유를 나열하는데 어릴 때 기억으로도 좀 어이없었다. 가톨릭교회에선 혼인이란 성사로 맺어진 하느님과 계약이라, 교리상으로 이혼이 성립하지 않는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한다면 그건 이혼이 아니라 혼인 무효라는 이름으로 겨우 가능해진다. 빌런과 결혼한 여주와 그를 구해낸 남주가 교회에서 혼인 무효를 인정받았다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도 기억난다. 좋게 보면 가톨릭교회의 기가 막힌 짬밥의 해결책이지만, 좀 안 좋게 보면 말장난 같은 느낌도 든다. 이 결혼은 원래부터 성사되지 않았다니. 이렇게 교리로 엄격하다고 가톨릭 신자가 이혼을 덜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상처 입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여간 이혼은 이제 엄연한 현실이요, 일상의 부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야기하기엔 편치 않다. 해서 이 책 결혼진술서는 정말 용기 있는 책이다. 가장 힘들었던 시절 자기 이야기를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더 자기 치유에 다가가는 느낌이다. 일차적으론 자기 삶 한 국면에 대한 성찰과 정리로 계속해서 이어질 자기 삶을 긍정한다. 그다음엔 그 막막한 현실 속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깜깜할 때, 이 책에서 펼쳐내는 이야기는 정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굳이 이혼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사랑과 연애 그리고 결혼에 관한 많은 생각거리를 전해준다. 문화비평가인 저자의 필치는 자전적 이야기는 물론 결혼도 하나의 비평적 대상으로 응시할 수 있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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