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 채광석 서간집
채광석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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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만 해도 성당을 아주 열심히 다녔다. 신앙심이 약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성당에 잘 나가지 않는다. 고등학교 주일학교를 다녔던 때는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고, 많이 헤매면서도 하나씩 하나씩 나를 채워갔던 시절이다.


그때 주일학교 교사는 요즘 말로 하면 '멘토'쯤 되었겠지만, 그들은 그 이상이었다. 선생님이자, 친구이자, 동료이자. 그때 틈나면 갑자기 집에 찾아가기도 했던 선생님이 하나 있었다. 미사는 땡땡이치고 찾아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도 얻어먹고. 그때 자기 책장에서 책을 하나 뽑아서 읽으라고 건네준다. 그 책이 채광석의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다. 책을 받고 몇 번 읽었다. 미술시간에 팠던 낙관을 꽉 찍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책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연서를 이렇게도 쓰는가 싶었다. 훗날 수많은 옥중 연서를 읽어보면서, 그래도 채광석은 꽤 낭만적인 편이구나 싶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신앙의 문제, 그러니까 자기만을 위한 신앙과 사회를 향한 신앙을 한참 고민하기 시작했던 시절인데, 이 책은 그러한 고민과 관련해 많은 영감을 주었다. 신에게 언제나 징징대고 무언가를 해달라고 요청하기보다 당당하게 우뚝 서서 대면해야 한다는 점을 채광석은 일깨워준다. 마치 본회퍼 목사의 고백을 연상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존재를 만난다. 30여 년 전 주일학교 교사의 방에서 처음 이 책을 만나고, 또 새롭게 세상에 나온 이 책을 만난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이 책을 펼쳐본다. 집필 시점만 놓고 본다면 처음 책을 읽을 때 저자는 삼촌이나 큰형뻘이었으나, 지금은 큰 조카이거나 막내 동생뻘이다. 예전에는 못 보았던 것도 몇 군데 보인다. 살짝살짝 남자다움을 내세우는 허세도 보인다. 재미있다. 맑고 순수한 청년의 기운은 그때나 지금이나 가슴 한 켠을 두드린다. 


"가장 아름답고 착한 것이 가장 더럽게 썩을 수도 있다는 경구는, 우리들 개개인에게 스스로를 새롭게 하기 위해 매 순간마다 자기를 반성하고 깨우쳐가기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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