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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의 진찰실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박수현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알토북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걸까, 죽어가고 있는 걸까?
얼마 전에 첫째 아이가 갑자기 저에게 질문했던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의 질문에 멍해지면서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구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삶과 죽음은 짝꿍처럼 늘 붙어다니는 것 같아요.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깊이있게 생각해 본 경험은 많지 않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 언젠가는 누구나 경험하게 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이번에 읽게 된 <스피노자의 진찰실>은 현역 의사 직업을 가지신 분이 쓰신 책이라 주인공들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 디테일함이 느껴졌어요.

저는 책 선택할 때 표지를 보고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따스함이 느껴지는 책은 정말 빨리 읽고 싶어지더라구요.
책을 완독하기 전에 느끼는 표지와 책을 완독한 이후에 느끼는 표지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 남자의 모습이 인상적인데
이 남자가 바로 <스피노자의 진찰실> 책에 나오는 주인공 의사 "마치 데쓰로"에요.
거동이 불편하고 병원에 오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직접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가는 의사 선생님이라니,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주인공에게는 미혼모 여동생이 있었는데 여동생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조카를 돌보기 위해 과감히 대학병원을 그만두고 교토 시내에서 일하며 환자 한명 한명에게 집중하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사망 진단서가 결승점이라는 사실은 분명 슬프지만, 환자의 얼굴을 기억 못하는 의사도 참 슬퍼요.
"마치 데쓰로" 가 일하는 곳은 대학병원과는 달리 거동이 불편한 환자, 암 말기나 노쇠한 환자들이 대부분이예요.
우리가 의사라는 직업을 생각하면 환자의 병을 발견하고 치료에 집중하는 모습이 떠오르잖아요.
하지만 이 책에서 마치 데쓰로가 보여주는 의사의 모습은 환자의 병을 고치기 보다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그 환자들의 마지막을 지키기 위한 듯한 모습이였어요.
자신이 진료하던 환자들이 결국 떠나게 되었을 때,
마치 데쓰로가 떠난 자에게 보내는 유일한 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에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평생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소중한 가족으로 살아오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왔을 그 분들이 마지막 떠나는 길에 그 말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쪽 세계로 가는 길은 일방통행이거든요. 특별한 날 돌아올 수 있다고 해도 언제든지 왕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러니 너무 서두르면 아깝잖아요.
암 환자에게 힘내라는 격려나 응원의 말 대신 너무 서두르지 말라고 말해주는 의사 선생님이 또 있을까요?
<스피노자의 진찰실 > 마치 데쓰로가 일하는 병원은 어려운 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낫지 않는 병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 알려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게 분명하게 느껴졌어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은 존경스러울 수 밖에 없었어요.
<스피노자의 진찰실>에서 정말 흥미롭게 느껴진 부분은
전혀 다른 유형의 의사인 것 처럼 보이는 마치 데쓰로와 하나가키의 케미였어요.
둘의 성격도, 나아가는 길도, 그 길을 나아가는 방법도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어서 서로에 대한 끈끈한 신뢰감이 느껴졌어요.
특히 하나가키의 아홉살 환자가 위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청하기 위해 마치 데쓰로와 나누는 대화 장면은 몇번이고 다시 읽어도 좋을만큼 인상적이였답니다.

<스피노자의 진찰실>에 나오는 하라다 병원이 추구하는 것은 가능한 현실에서 환자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계속 진찰해 온 의사가 왕진을 하거나 임종을 지키며, 환자에게 안심을 주는 거에요.

지금 우리가 처한 의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데,
이 책에서는 환자를 향한 따스함과 배려가 많이 묻어나는 느낌이라 글을 읽는 내내 저의 마음도 따듯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