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 - 12년차 집시 세라의 인생사용법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삶의 양식이 다른 여행자가 건네는 위로
 


대학 때 류시화의 책을 즐겨 읽었다. 특히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을 좋아했는데, 거의 매페이지마다 문장에 줄을 긋고, 여백에 메모를 하며 읽었다. 그때는 한껏 감성을 부풀리며 키우는 때여서 류시화의 서적은 내게 대단히 질좋은 양식이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큰 감동을 맛보았다.

곽세라의 이번 책, ‘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을 읽으며 류시화의 책을 떠올린 것은 배경이 인도였기 때문이었을 거다. 곽세라의 글과 류시화의 글은 배경을 떼어놓고 생각해보면, 오히려 대척점에 놓여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곽세라의 글은 ‘떠도는 자의 자전적 기록’에 가깝지만, 류시화의 글은 ‘돌아오는 자의 여행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곽세라는 인도에서 ‘나’라는 존재가 어떤 행동을 하였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류시화는 인도라는 세계와 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모습이 내겐 어떤 의미였는지를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곽세라의 이번 책의 성격을 요약하면, ‘광고회사의 커리어우먼이었던 한 여자가 집시의 인생을 선택하고 12년을 떠돌면서 겪은 가슴 벅찬 나날들에 대한 자전적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인생을 바꾸는 순례를 떠나려는가?
 30cm만 움직이면 된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딱 힘을 뺀 한 발자국이다.”
그 한 발자국으로 인해 그녀가 어떤 인생의 찬가를 부르게 되었는지가 책에는 자세히 나와있다. 다만 나로서는 그녀의 감성에 동화되기가 다소 어려웠는데, 가장 큰 원인은 내가 기혼자이며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녀의 가르침이 통하는 대상은 아마도 미혼자이며 동시에 자기자신의 욕망 이외의 다른 것을 책임지지 않을 사람에 한할 것이다. 이 시대에 모국 한국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책임지기로 결정한 사람의 고됨은 그녀의 인생찬가와는 소통하지 못한다. 그녀가, ‘나의 이 기뻐 날뛰는 삶을 인생을 심각하게 살 용의가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바친다’고 밝혔듯 그녀의 가벼움은 심각함을 놓아버린 데서 비롯하는 것이며, 심각함을 가벼움으로 승화시킨 데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대체로 인생의 심각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어서, 그녀의 훌륭한 독자는 되지 못한다. 다만, 책을 읽고 나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날짐승으로 태어난 사람과 들짐승으로 태어난 사람의 서로 다른 삶의 양식을 말이다. 각자의 태생이 무엇이든 이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모두 들짐승으로 길러진다. 그러므로 태생이 날짐승인 사람들은 언제나 무언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신호를 받는다. 날짐승으로 태어난 사람은 보편적인 삶의 양식 안에서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태생을 거스르는 것과 태생을 받아들이는 것 양자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용기있는 행동일까? 용기란 선택의 방향보다는 선택의 이유에 달려있을 것이다. 곽세라의 선택은 태생을 받아들이는 것이었지만, 그녀의 언급은 선택 이후의 삶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치중되어 있어서 나는 그녀의 선택이 어떠한 이유와 각오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읽지 못했다. 그러니 그녀의 ‘기뻐 날뛰는 삶’에 대해서 공감이나 부러움보다는 궁금증이 앞설 수밖에.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여행자가 노래하는 삶의 기쁨은 온전히 타인의 것이어서 나는 그녀의 웃음에 감염되지 못했다. 그녀의 기쁨이 어떤 형태로 변형되어서 ‘이곳’에서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쁨이 될 수 있는지 나는 그려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선택지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생생한 사실은 적지 않은 위안이 되었다. 토착민에게 ‘이곳’은 때로 너무 고된 곳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신비로움과 즐거움으로 가득찬 곳이 된다는 책 속의 언급처럼, 이 세계의 본질이 ‘고통’이 아니라 ‘다양’하다는 사실은 괴로운 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달래준다. 내 고통보다 더 넓은 세상이 있음을 엿보는 일은 사랑하는 친구의 오랜 편지를 읽는 것처럼 늘 우리의 마음을 다독인다. 곽세라의 저서, ‘길을 잃지 않는 바람처럼’이 갖는 미덕은 이와 같은 것이다.

현실에서 잠시 여행을 떠나 숨을 고르고 싶은 사람들이 찾기에는 괜찮은 책이다. 다만,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잠시간의 숨고르기일 뿐, 어떤 단단한 각오나 깨달음 혹은 용기가 아니다. 당신은 아무런 갑옷이나 무기를 얻지 못한 채 다시 당신의 전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다만 조금은 덜 두려운 마음을 가진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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