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아리스토텔레스의 말 - 현대인들의 삶에 시금석이 될 진실을 탐하다
이채윤 엮음 / 읽고싶은책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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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높은 책과 독자가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책은 다른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여러 서적에서 음미할 문구를 골라서 엮은 이 책은 구성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 일례로 131p의 <국가는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와 141p의 <국가는 선을 추구하는 공동체이다>는 같은 원문을 번역만 조금 다르게 한 것이다. 이처럼 같은 원문을 실은 경우가 몇 번 더 있었다. 책은 '엔터스코리아(책쓰기 브랜딩스쿨)'에서 기획하였고, 10년에 100여 권의 책을 출간한 '이채윤'님이 엮었다.

완성도의 미흡함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책은 즐겁게 읽힌다. 철학을 잠언 형태로 엮은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이 책도 생각할 거리를 툭툭 던져준다. 먼저 '행복'이다.


행복은 오락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목적이 즐거움뿐이라면 이상할 것이다. 우리가 단지 우리 자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평생 노동을 하고 고난을 겪는다면 정말 이상할 것이다. 행복한 삶은 미덕에 부합하는 삶이어야 한다. 그것은 노력이 수반되는 삶이고 재미로 소비되는 인생이 아니다. (22p)

사람은 개인적으로나 인류 전체로나 어떤 목표를 갖고 있다. 거기에 따라 뭔가를 추구하거나 회피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한 마디로, 목표라는 것은 행복과 그 구성 요소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행복이란 무엇이고, 그 구성 요소는 어떤 것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행복과 관련되어 있고, 그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냐와 연관된다. 여기서 우리가 할 일은 행복을 파괴하거나 방해하거나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은 미덕을 실천하는 삶, 풍요로운 삶, 지극히 즐겁고 안전한 삶, 재물이 풍족하고 육신이 편안한 가운데 그런 것을 지키고 사용할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 또는 여럿이 합쳐진 것이 행복이라는 것에 모두가 동의한다. (30p)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남길까 생각해 본 적 있다. '이번 생(生), 잘 웃다간다' 이 정도면 근사하겠다 싶었다. 행복이란 추상 명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방법은 다음처럼 질문을 바꾸는 거다. '이번 생 어떻게 살고 싶니?' 나에겐 이 질문의 대답이 웃음이었다. 즉 나에게는 웃음이 행복의 동의어였다. 이 정의가, 나는 무척 마음에 든다.

웃는 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그러면 나 혼자 웃으며 살면 그걸로 된 걸까. 만약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아내가 이 글을 엿보진 않을지 늘 가슴 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이쁜 두 딸들이 시무룩한 날에도 나는 더 바랄 것 없이 즐거울 수 있다고 선언해야 할 것이고.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러니 행복은 1차적으로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행복이 있고, 2차적으로 타인을 통해서 달성되는 행복이 있다 할 것이다.

나의 웃음은 내가 달성하는 것이고, 너의 웃음은 네가 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너의 웃음은 나의 2차 행복이 될 수 있다. '그러니 화이팅'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러니 네 행복에 내가 작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그 작은 기여를 위해서 나는 내 나름대로 성의있게 살고 싶다. 그런 연유로 나의 블로그 제목도 '우리 같이 웃어볼까요?'가 된 것이다.

두 번째 생각 거리는 '친구'다.

노인이나 성마른 사람은 쉽사리 친구가 되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는 즐거운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지 않는 사람과 지낼 수는 없다.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을 하다보면 서로 우호적인 사이가 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함께 생활하는 것만큼 친구를 친구답게 만드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에게 고독하게 지내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다.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끼리 지극히 다정하고 복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서로에게 즐겁지 않고 같은 것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 동료가 친구가 되는 것은 같은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한 사람들의 우정이 최고의 우정이다. 무조건 선하거나, 무조건 즐거운 것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 (70p)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친구는 서로의 뛰어난 점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듬는 사이라는 것. 이 설명이 굉장히 와닿았다. 그렇지. 우리는 뛰어난 점과 부족한 점이 서로 다를 뿐이지. 다르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는 친구일 수 있는 거지. 아내와 나는 십년지기 친구에서 연인이 된 케이스다. 친구일 때도 나는 아내가 좋았다. 연인일 때도 나는 아내가 좋았고, 아내가 된 지금도 나는 아내가 좋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보듬는다면 아내와 나는 친구이자 연인이자 부부로서 오래 함께 하며 즐거울 것이다. 아내도 나도 얼마나 보듬을 구석이 많은 모자란 사람인지. 다행이다.

세 번째 생각은 '시'와 '역사'다.

시는 역사보다 더 정교하고 철학적이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고, 역사는 특정한 사실만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238p)

블로그 이웃 중에 시인도 계시고, 역사 선생님도 계신다. 어느 한 쪽을 편들기는 어렵다. 시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역사는 사건을 이야기한다. 시는 보편적이지만 추상적이고, 역사는 한정적이지만 구체적이다. 사건과 감정, 생활과 생각은 따로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역사 없이 시가 있을 수 없고, 시 없이 역사가 전개될 수 없다, 라고 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쓰고 싶다. 어느 한쪽을 편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건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 

그 밖에 다른 생각할 거리도 많았지만, 요즘 주식시장이 너무 널뛰기를 해서 심신이 피로한 관계로 나머지 생각거리는 거두지 못했다. 화두를 찾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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