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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ㅣ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평점 :
책을 읽게 된 이유
내 취향을 잘 아는, 아는 동생이 추천한 책이다. 동생은 책을 추천받는 일이 싫다고 했다. 성공 확률이 너무 낮은 소개팅이어서다. 그런 동생이 권한 책이니 어찌 흥미가 동하지 않겠는가.
명언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코카콜라 광고다. "상쾌한 이 순간"이란 광고 카피가 멋졌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그 카피를 남발하며 호언장담을 했다. "난 내 명언으로 책을 낼 거야."
책을 펼치니 프롤로그부터 심상치 않다.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왜 소설을 안 보냐고 물으면 "분량 대비 건질 문장이 없다"라는 말을 뻔뻔스럽게 늘어놓곤 했다. 다독가라기보다 문장 수집가로, 서사보다 문장을 탐했다. 우표 수집가가 우표를 모으듯 책에서 네모난 문장을 떼어 내 노트에 차곡차곡 끼워 넣었다.
남의 얘기 같지 않은 글일세.
니체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의 문장 스승은 크게 둘로 나뉜다. 니체와 다른 작가들. 니체는 뜻도 모르고 읽었고 이해하지 못한 채로 빠져들었다.
옳커니! 이 대목에서 무릎을 쳤다. 동생에게 니체의 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문장수집가이자 니체의 팬이 쓴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바로 꺼내들었을 거다. 소개팅은 성공이다.
어떤 책인가
저자는 모종의 사연으로 인하여 생계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다. 글쓰기는 독학으로 익혔다고 한다. 현재는 여덟 권의 책을 낸 작가이고, 글쓰기 강좌를 열어 학인들을 가르치고 있다. 책은 총 104 개의 명언과 그에 대응하는 저자의 한 쪽짜리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 페이지에는 명언이, 오른쪽 페이지에는 에세이가 있는 구성이다. 문장 001에서 문장 104까지 chapter 구분없이 쭉 달려나간다. 프롤로그가 워낙 좋았던 탓에 초반 문장과 에세이는 상대적으로 덜 좋게 읽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첫인상의 호감이 되살아났다.
읽고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
글은 창(窓). 글쓰기는 창을 여는 일이란 생각을 했다.
미련하게 잘도 참았네요. 첫 아이를 낳는 날, 산통이 시작되어 병원에 갔을 때 의사가 몸속에 손을 쑥 집어넣더니 한 말이다. 산도가 십 센티미터 열려야 태아가 나오는데 벌써 절반이 열렸단다. 초산은 산모들이 너무 일찍 와서 탈인데 나는 많이 참다 온 특이한 경우라고 했다. 살던 집을 팔아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주위에서 동정 섞인 핀잔을 들었다. '어떻게 몰랐냐', '쯧쯧쯧, 미련하다' 같은 말들. 그러니까 미련은 내게 익숙한 삶의 태도였던 것 같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도 친구와 약속을 하면 전봇대처럼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냥 기다리곤 했으니까.
살다 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쌓여 갔다. 자주 숨이 찼다. 참을 인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 말을 쏟아 내긴 싫었던 것 같다.
(23p)
프롤로그에서 느꼈던 저자의 활기가 첫 에세이에서는 느껴지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아오니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이때는 글쓰기를 만나기 전의 상황이다. 창이 열리기 전,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 똑같은 세계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자각도 없이 매일 조금씩 소멸해가던 때의 이야기.
수첩에 받으려다가 충동적으로 가방에 있던 책을 꺼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지금처럼 글쓰기 도서의 종수가 많지 않았을 때 고전으로 꼽히던 책이다. 표지를 열어 연둣빛 페이지를 내밀었다. 이름을 말하고 작가님처럼 글 '잘'쓰고 싶다고 말한 것 같다. 이렇게 쓰여 있는 걸 보면.
"간절하게 원하면 지금 움직이세요. 노희경입니다. 2005.6"
(29p)
창을 열면 낯선 세계의 풍경과 함께 바깥의 공기가 밀려 들어온다.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 낯선 풍경과 쉬어지는 숨. 그리하여 미련했던 한 사람은 낯선 곳으로 가는 발걸음을 뗀다. 생계에 쫓기듯. 그러나 꼭 거기여야만 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쪽으로. 그녀에게는 글쓰기였다.
책을 내면 부끄럽기도 하고 좋기도 한데, 부끄러운 건 책을 낸 사실 자체이고 좋은 건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된다는 점이다. 『글쓰기의 최전선』은 내게 좋은 친구를 여럿 만들어 주었다. 가령 이런 말을 들려주는 사람들이다. "'생의 감각'이 살아나는 기분이다." "매우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글쓰기 책이다." "글쓰기를 배우려다 삶을 배워 버렸네."
(229p)
세상이 주지 않은 이유를 스스로 손에 들고서 시작한 글쓰기는 그녀에게 부끄러움과 친구를 선물했다. 부끄러운 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을 책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열어 볼 수 있게 했기 때문이고, 친구가 생긴 건 창을 열어 본 사람 중 몇 명이 곁에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잘 살았다. 그녀 식으로 말하자면, 잘 '썼다'.
산다는 건, '산다'는 동사를 다른 동사로 바꾸는 일일지 모른다. 그녀는 '쓴다'라는 동사를 골랐다. 나도 쓰기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녀만큼은 아니다. 나는 애호가 정도다. 프로가 감동을 빚을 때 애호가는 즐거움을 빚는다, 고 말할 수도 있겠다. 글이든 사랑이든 인생이든 애호가로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다면 근사한 일일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며 독서 애호가이자 글쓰기 애호가로서 큰 즐거움을 누렸다. 추천해 준 동생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아우님, 제대로 된 소개팅이었어!'
(비밀 아닌 비밀을 말하자면 나는 소개팅을 한번도 못해봤다. 그런데도 마치 경험자처럼 말했는데, 이해하시라. 형들은 원래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