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오래 된 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운동 마니아가 되어 튼튼한 사내가 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유머 마니아가 되어 즐거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래 된 꿈이 흔히 그렇듯, 나의 두 꿈도 모진 전쟁통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패잔병은 이제 노병이 되었지만 아직 승리를 꿈꾼다. 그래서 가끔 운동을 하고, 가끔 이렇게 유머 책을 읽는다. 어쩌면 이 또한 하나의 Grit이 아닐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한동안 유머를 배우고 싶어서 유머 서적을 뒤적였다. 제목은 유머인데, 내용은 유머러스하지 않은 수많은 책들을 만났다. 유머란, 내가 생각하기로는, 웃음으로 마음의 긴장을 한번 풀어내는 것이다. 그 기준으로 보았을 때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유머가 아닌 풍자를 담고 있었다. 이 책, <유머라면 유대인처럼>은 탈무드의 일화들을 편역한 것이다. 탈무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교육용 교재다. '피식' 웃거나 '쓰게' 웃게 되는 교훈적인 일화가 많다.
책은 총 114개의 일화를 담고 있다. 별도의 장 구분 없이 모든 일화가 연속으로 나열된다. 각 일화의 구성은 <제목> - <편역자의 Insight> - <내용>으로 구성되는데, 다소 의아하게도 편역자의 Insight는 대부분 진지한 글이다. 아마 이분도 나처럼 진지함의 바다 위에서 유머라는 환상의 섬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자인 모양이다.
책의 내용중 재미있었던 일화를 몇 가지 소개해 본다. (편역자의 인사이트는 포함하지 않았다)
상술
한 일본인 화상(畵商)이 파리를 여행하던 중, 유대인이 운영하는 화랑에 들러 유명 화가가 그린 동일한 그림 두 장을 발견했다. 가격을 물으니 2천 달러라고 했다.
일본으로 가져가면 장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그 일본인은 그림 두 장을 사겠으니 깎아 달라고 했다. 그러자 유대인 화상은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인 5천 달러를 요구했다.
두 장을 사는데 깎아 주지는 못할망정 더 많이 달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그러자 유대인 화상이 말했다.
"당신이 2천 달러에 그림 한 장을 사 가면, 남은 한 장은 희소가치가 적용되기 때문에 3천 달러를 받을 수 있소."
(236-237)
마술
유대인과 아랍인이 빵집에 갔다. 아랍인은 빵 3개를 훔쳐 주머니에 넣었다. 아랍인이 의기양양하게 유대인에게 말했다.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봤지? 주인은 아무것도 못 봤어!"
유대인은 아랍인에게 말했다.
"유대인보다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보여주겠어."
유대인이 빵집 주인에게 가서 말했다.
"빵 하나 주시면 신기한 마술을 보여드리지요."
주인은 영문을 모른 채 빵 하나를 유대인에게 줬다. 유대인은 그걸 재빨리 삼키고는 또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빵 3개를 연거푸 먹고 빈손을 보여줬다.
주인이 유대인에게 따졌다.
"그게 무슨 마술입니까? 절 속이려는 거에요?"
유대인이 대답했다.
"저기 서 있는 아랍인의 주머니를 확인해보세요."
(45-46p)
험담 1
목사 세 사람이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한 사람이 두 친구에게 말했다.
"주변에 신도들도 없으니, 우리 한 번 솔직해져 보는 게 어떻겠나? 서로 완전히 속마음을 열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고백해보세. 나는 말일세. 돈이 무척 좋다네. 하지만 빈약한 목사 월급으로는 사고 싶은 것을 모두 살 수 없어서, 헌금 바구니에서 돈을 슬쩍한 적이 있네."
두 번째 목사가 말했다.
"서로에게 정직해보자는 거니까, 나도 털어놓겠네. 나는 도박을 즐겼다네. 나는 뭐든 돈을 걸어야지 직성이 풀린다네. 야구나 축구 경기 특히 경마를 제일 좋아하네."
세 번째 목사는 잠자코 침묵을 지켰다. 한참을 기다리던 두 친구가 그를 채근했다.
"우리는 모두 죄를 고백하지 않았나. 그러니 이제는 자네 차례일세. 자네가 저지른 죄 중에서 가장 용서받기 힘든 게 뭔가?"
드디어 그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내 죄는 험담하는 것을 즐기는 것일세. 벌써부터 집에 돌아가는 것이 기다려지는군."
(80-81p)
욕심
한 부부가 씨수말을 사기 위해 시장에 갔다. 첫 씨수말의 안내문에는 '지난해 교미 50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보고 부러운 듯 말했다.
"당신도 배워요. 1년에 50번이나 했대요."
다음 씨수말의 안내문에는 '지난해 교미 120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보고 더욱 부러운 듯 말했다.
"어휴. 당신도 배워요. 한 달에 10번씩이나 되네요."
다음 씨수말의 안내문에는 '지난해 교미 365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째려보며 말했다.
"어휴. 정말 당신은 부끄러운 줄 아세요. 하루에 1번씩이네요."
지금까지 아내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남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저 씨수말이 365일 똑같은 암말과 했는지, 어디 물어보고 오시오!"
(100-101)
유머에 관한 나의 롤모델은 MC 신동엽이다. 목소리가 쎄지 않고 말을 편하게 한다. 돌멩이 같은 음성이 아니라 공기 90%의 까끌한 솜뭉치 같은 음성이랄까. 동엽신의 개그에 한번 웃고 나면 가슴이 환기되는 것같아 개운하다. 그리고 짓궂은 19금 유머를 대체로 선을 잘 지켜서 한다. '성(性)'은 특히 좀 편하게 다루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주제다.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조심스럽게 다루어져서 일종의 족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서다. 남녀의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차이와 우리나라의 문화 역사적 배경, 그리고 대중과 학부모의 소양 등등 여러 난관도 있지만, 하여간 이 주제가 사람을 구속하지 않고, 사람이 이 주제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아내 혹은 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이 주제에 대해 때로 농담을 나누기도 하지만, 그외의 사람들과는 아예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한두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너 왜 그래? 이런 얘긴 너랑 안 어울려.' 대체로 이런 피드백을 받았다. 그건 뭐... 어쩔 수 없다. 유재석이 야한 유머를 하면 분명 안 어울릴테니까.
유머는 참 배우기 어려운 스킬이다. 일단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유머나 개그로 검색을 해보아도 이렇다할 '명저'를 찾기가 어렵다. 유머 Acamedy가 있는지 찾아 본 적도 있는데, 한때 운영되었던 아카데미도 곧 문을 닫은 경우가 많았다. 유머를 훈련시켜주는 곳이 있다면 좀 멀더라도 다닐 마음인데, 도통 해법을 찾지 못하고 몇 년 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식은 부침전처럼 맛없게 식어버린 유머 꿈이 문득 생각날 때면 툭툭 아내에게 한두 마디를 던져보는데, 그럴 때마다 아내가 잘 받아준다. 유머 수준이 비슷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이 행동이야말로 사랑의 큰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아내가 유머를 받아줄 때마다 그녀의 깊은 인품과 아직 식지 않은 따땃한 사랑을 동시에 느낀다. 각설하고.
아무튼 나는 책으로 무언가를 익히는 게 즐거우므로, 앞으로도 유머나 개그가 제목에 들어가는 신간은 무조건 읽기로 한다. 이 책은 총 246페이지며, 일화가 끝날 때마다 여백을 남기고 다음 페이지에 새로운 일화가 시작되는 구성이어서 분량 부담 없이 읽기 편하다. 나와 같은 레벨에서 유머를 향해 나아가려는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객관적이지 않은 서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