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술 - 로마의 현자 에픽테토스에게 배우는 슬기롭게 사는 법
샤론 르벨 엮음, 정영목 옮김 / 싱긋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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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철학을 다룬 서적이다. 그는 노예의 신분으로 태어났고 절름발이였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이 뛰어나 이를 눈여겨 본 주인이 로마로 유학을 보내주었고, 스토아 철학자 가이우스 무소니우스 루푸스로부터 철학을 배웠다.

에픽테토스의 흥미로운 점은 '명상록'을 집필한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스승이란 점이다. 둘은 어떻게 만났고 어떤 사제 관계였을까. 이 책을 읽고 다소 맥빠지는 답을 알게 되었다. 둘은 만난 적이 없다. 아우렐리우스는 에픽테토스의 철학을 그의 책으로만 접했다.

에픽테토스의 다른 흥미로운 점은 그의 철학이다.

우리 소박하게 현실적으로 해봅시다. 당신이 지금 처한 삶의 환경에서 가능한 한 가장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봅시다. 당신이 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자아가 되는 길로 나아가봅시다.

행복과 자유는 한 가지 원리를 분명히 이해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 원리란 어떤 것들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9p)

당신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에 속한다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훈련을 하십시오. (33p) 

삶에서 가치가 있는 유일한 목표는 자유입니다. 자유를 얻는 방법은 우리 뜻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두려움과 야망으로 재앙의 솥단지처럼 부글거리면 마음이 가벼워질 수가 없지요. 
무적이 되고 싶습니까? 그럼 당신 뜻대로 할 수 없는 전투에는 가담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세 가지이며, 그 세 가지 모두 당신 뜻대로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당신의 의지이며, 둘째는 당신이 관련된 사건들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며, 셋째는 당신이 자신의 생각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68)
다소 놀랍게도 에픽테토스의 이야기는 현대 심리학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뜻대로 할 수 없는 외부의 사건들을 걱정하는 대신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내부의 사건들에 집중하라는 충고는 불안으로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는 현대인들에게 심리학이 건네는 처방과 동일하다. 불교가 마음의 평정을 회복하는 데 우뇌 지향적인 관점을 사용한다면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서양인에게 보다 익숙한 이성을 강조하는 좌뇌 지향적인 관점을 사용한다는 게, 이 책을 엮은 샤론 르벨의 생각이다.

이성과 감성이 들쭉날쭉 멋대로 자라있어서, 내게는 좌뇌 지향, 우뇌 지향 처방이 모두 효과가 있다. 이 책은 엮은이의 설명대로 확실히 좌뇌형 책이다. 감성적인 부분은 최대한 터치하지 않으면서 읽는 이를 차분하게 만든다. 놀랍고도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이 얼마 전에 읽은 루이스 헤이의 <하루 한 장 마음챙김>(완전 우뇌형 책이었다)과 완전히 똑같은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루이스 헤이는 '생각을 바꾸려고 하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하나의 아이디어로부터 자신의 생각을 펼쳤는데, 그녀의 핵심 주장은 '인생은 당신을 사랑한다(Life loves you)'이다.  이 얼마나 감성적인가! 좌뇌이든 우뇌이든, 에픽테토스든 루이스 헤이든, 서양 철학이든 동양 불교든 모두 동일한 하나의 전제인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에서 출발하는 거였다니!

여러 철학, 명상 책을 읽을수록 알게 되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목적을 추구하는 방법론은 모두가 동일하지만 추구하는 목적 자체, 각자가 되고 싶어하는 '최선의 나'의 모습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삶의 목적은 누군가에게서 배우는 게 아니라 자신이 세우는 것이고, 우리는 자신이 세운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만을 타인으로부터 배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분명히 정하라 Clearly Define the Person You Want to be
정확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어떤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당신의 개인적 이상은 무엇입니까? 누구를 존경합니까? 존경하는 사람의 어떤 특질을 당신 것으로 만들고 싶습니까? (102p)

원하는 것이 선명할수록 혼란은 줄어든다. 물론 자유도 줄어들지만 원하는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안다면 괜찮다. 자, 좋은 철학 책을 읽은 기념으로 한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정리해보자. 

1. 관계적 측면 : 가족과 꽁냥꽁냥하며 지내는 사람. 
2. 문화적 측면 : 다양한 문화를 감상하며 지내는 사람.
3. 시간적 측면 :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대하며 생활하는 사람.
4. 활동적 측면 : 건강하게, 활기있게, 유머러스하게 활동하는 사람.
5. 감정적 측면 : 마음의 평정, 온화함이 defalut인 사람
동양 문화인지 우리나라의 문화인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선언하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에픽테토스는 그 문화를 저만치 따돌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삶의 의미는 목적의 달성에 있지 않고,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걸음에 있다는 거다.

진정한 행복은 동사입니다. 그것은 가치 있는 일을 지속적이고 역동적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융성하는 삶의 기초는 덕을 지향하는 마음이며, 그 삶은 우리가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 영혼이 성숙합니다. 우리 삶은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습니다. (152-153p)
에픽테토스는 당대의 많은 철학자들과는 달리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도덕적 탁월함을 추구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도덕적 완벽함의 추구보다 도덕적 진보를 강조한 것은 그의 천재성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19p)

고대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철학이 여러 다양한 분야로 분화되기 이전의 이야기다. 고대 철학은 현대 심리학처럼 현대인의 어지러운 감정을 평정시키는 방법론을 세밀히 제시하지는 못하는 대신,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집중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 어떤 욕망이 가치 있으며, 우리는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와 같은 주제를 다룬다. 위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적은 바를 보면 알 수 있듯, 심리학이 강조하는 마음의 평정이란 '5번 감정적 측면'에서의 이야기이고 삶에는 나머지 네 분야의 이야기가 아직 남아있다.

우리에겐 두 가지 인생이 있다.
두 번째 인생은 우리 인생이 한 번뿐임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 공자

공자의 이 이야기에 동의한다면, 철학 서적을 읽는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다. 철학 서적은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묻는다. 그 주제로 누군가와 수다를 떨고 싶기 때문에, 우리는 철학 책을 읽는다.


※ 출판사의 설명에 의하면 이 책은 『새벽 3시』(2015)의 재출간 도서다.
※ 이 서평은 출판사의 이벤트에 참여하여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한 냉정한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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