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
이지혜 지음 / 파람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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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클래식이란 좋아하고는 싶은데 영 모르겠는 어떤 것이다. 상당한 음치인 나는 어릴 적 클래식을 무척 좋아했지만 이 선율이 바흐의 것인지 모차르트의 것인지 베토벤의 것인지 도통 구분하지 못했다. 중학교 때 음악 과목의 청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집에서 여러 클래식 곡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식은 땀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 곡이 저 곡 같고, 저 곡이 그 곡 같고, 가사가 없는데 대체 어떻게 곡을 구분하란 말이냐. 곡의 제목을 맞추고, 작곡가를 맞춘 다음, 그 작곡가의 시대를 맞추어야 하는 이중 삼중의 음악 문제는 내게 너무 커다란 벽이었다.

클래식을 들으며 진땀을 흘렸던 열 다섯 살 소년은, 이제 긴 세월을 건너 마흔의 중년이 되어 다시 클래식 앞에 섰다. 지혜로워진 소년은 무작정 음악을 듣기보다 감상을 위해 음악의 탄생 배경을 먼저 알아보고자 책을 찾았다. 그리하여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지금 이 계절의 클래식』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한 인문 클래식 가이드'라니. 인문학에 친숙한 소년에게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다.

책은 기대만큼이나 훌륭하게 클래식의 불모지인 소년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채워주었다. <가을> - <겨울> - <봄> - <다시 여름>으로 이어지는 4계절의 큰 Part 안에 각 10 개 내외의 곡이 소개되어 있다. 해당 곡들은 주로 그 계절에 연주되거나, 그 계절에 작곡 되었거나, 아니면 그 계절의 날씨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곡들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파트인 <가을>에 소개되는 곡들은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리스트의 사랑의 꿈, 쇼팽의 녹턴, 엘가의 첼로 협주곡,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 등이다. 각 곡마다 그 곡을 작곡한 음악가의 생애가 짧게 소개되고, 음악가가 이 곡을 작곡했을 때 처한 개인적 상황과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함께 알려준다. 설명은 중학교 음악 교과처럼 건조하게 사실만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의 풍부한 인문학적 감수성을 토대로 서정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소년처럼 클래식에 무지한 독자라도 해당 곡에 대한 감상(감성) 포인트를 쉽게 알 수 있다.

저자는 학부에서 철학과 음악(바이올린)을 전공한 데 이어 음악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2002년부터 클래식 음악 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은 이지혜씨다. KBS 라디오 《김선근의 럭키세븐》에서 맡았던 '누구나의 클래식(2018.6~2019.12)'에서 유쾌한 클래식 음악 해설로 청중들의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책을 읽으며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모차르트가 당대에는 그리 성공하지 못한 음악가였다는 사실이다. 신동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음악가로서의 성공은 그의 사후에 이루어진 것이고, 서른 다섯에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는 생활고와 건강 악화에 시달렸다. 천재의 자유분방하고 명랑한 음악을 주로 만들었고 삶 또한 그렇게 살다 간 인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조금 놀라웠다. 또 다른 재미는 유명한 음악가들의 인연이다. 리스트가 베토벤의 제자였던 체르니의 제자가 되고, 체르니가 베토벤을 초청하여 리스트의 연주를 들려주자 베토벤이 당시 열 두살이었던 리스트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는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다른 일화로는 브람스 - 슈만이 있다. 1853년에 브람스가 슈만 부부를 처음 만난 날, 음악가 슈만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스무 살 청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진심으로 경탄해서 '천재가 다녀갔다'는 기록을 일기장에 남긴 후, "브람스가 베토벤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글을 음악 잡지에 기고하여 당시 무명이었던 한 청년을 유럽 음악계의 총아로 만들었다.

그 밖에 얀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특히 막심 벤게로프 연주)이라든가, 무려 스무 명의 자녀를 낳을 정도로 왕성한 욕구를 지녔던 바흐가 역사상 가장 많은 1,336곡을 작곡한 음악가라는 것 등, 클래식에 대한 쓸모있고 흥미로운 다양한 지식들을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다.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읽으며 소개 된 음악을 듣는다면 머지않아 클래식 애호가로 거듭날 수 있을 듯하다.

책을 읽은 다음 음악을 들으니 음악이 훨씬 더 깊이 와닿는다. 기억에도 오래 남을 것 같다. 클래식 애호가를 꿈꾸는 중년에게는 너무나도 반가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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