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얼굴이 있다면 너의 모습을 하고 있겠지
고민정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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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예능 <연애의 참견>의 고민정 작가가 쓴 에세이다. 아내가 이 예능 프로의 팬이다. 따라서 내가 이 책을 읽은 건 사랑 때문이라 할 수 있으리라.

미혼 남녀의 연애 이야기가 그득하다. 화자는 여성이다. 젊은이들의 뜨겁고 서투른 사랑맺음 이야기는 이별로 인한 가슴 앓이, 치유를 위한 효율적이지 않은 자가 노력, 새로운 사랑, 그리고 조금은 다른 러브 스토리와 어느 정도는 비슷한 이별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아무래도 에세이를 읽는 독자인 내가 나이 마흔의 남성이고 기혼이기 때문에, 이 사랑 에세이에 깊이 몰입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어른이 사춘기 아이들의 감성을 바라보듯이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이 화자는 사랑을 이런 관점으로 보는구나. 이 화자의 관점에 사랑을 바라보는 여성들의 보편적인 관점이 담겨 있는 건가. 그렇다면 혹시 아내의 관점도? 

감수성이 발달한 사람들이 그리는 사랑에는 흔히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빈곳이 많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채우면서 사랑을 이루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한결같은 그 사람이 나의 마음 빈곳을 채워주며 사랑을 이루는 형태다. 이 둘은 모두 대체로 여성이 그리는 사랑의 서사인데, 이는 달리 말하면 보편적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감수성이 발달했다 볼 수 있단 뜻이다.

아내는 연애시절 나와 어떤 사랑의 서사를 그렸을까. 그리고 결혼 10년차가 된 지금 그 서사는 아내의 마음에서 어떤 빛깔을 띄고 있을까. 평소에는 공들여 생각하기 어려운 이런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리게 됐다. 연애 이야기란 이렇듯 나이 마흔의 중년 아저씨에게조차 소용이 있다.

누군가를 푹 사랑할 때 우리는 여러 질병을 앓게 되는데, 이를테면 시도때도 없이 보고싶다거나, 그동안은 굳이 누군가와 나누지 않았던 사소한 감정들까지도 함께 하고 싶다거나, 당신이 없었던 그동안의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었다고 착각을 한다거나, 그대가 없다면 난 당장이라도 끝장날 것 같은 이 절박함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라고 믿는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질병 중에도 딱 하나 좋은 질병이 있으니, 그건 바로 '네가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질병이다.

상대의 웃음을 내가 얼마나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게 되면, 마찬가지로 상대 또한 나처럼 나의 웃음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내가 행복해질 필요가 있구나, 깨닫는 그때야말로 사랑이 감수성이 발달한 한 사람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순간이다.

아내와 나는 몇 년 전 가훈을 만들었다. '시트콤처럼 살자'다. 함께 웃자.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도달한 사랑의 형태다.

헌데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이런 의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분명 아내와 나는 현재 같은 사랑의 결론을 가지고 있지만 위에 적은 맥락은 순전히 나의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내가 결론에 다다르게 된 맥락에 대해서 내가 쓴 글은 아무런 내용도 담고 있지 못하다. 허면 아내의 맥락은 무엇일까.

어쩌면 기혼의 사랑이란 이 간격을 알아차리고 그리하여 아내에게 묻는 것이 아닐까. 당신의 맥락이 궁금하다고. 치맥 한잔 하자고.

결혼생활 10년차쯤 되면, 사랑보다도 인생이란 게 별 거 아니다 싶은 순간을 겪을 때가 온다. 별 거 아닌 인생에, 별 거 아닌 우리가 만나, 별 거 아닌 순간들을 지지고 볶다 간다. (물론 볶음 중에는 우리에게서 발생한 후손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사랑스러운 두 딸도 있긴 하다) 사랑이 웃음처럼 일상에 녹아들어서 참 별 거 아니게 되었을 때, 그때가 우리에겐 딱 좋은 것 같다. 여성들이 몸서리치는 비유를 들자면, 이것이야말로 연애를 제대한 이들의 사랑인 거다. (그러니 이제 갓 입대한 미혼의 젊은이들은 당면한 전투같은 사랑을 그저 뜨겁게 하시길)

전투같은 사랑을 하는 젊은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읽으면서 정말 우리들의 이야기야, 공감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결말에는 작은 반전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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